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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ve Score, Divided by Four

Chapter.5 Last chance to buy. (마지막 구매기회.)

번역자 : 청십초

잭의 낯빛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뭐, 지금 당장 말해주는 것 보단 부엌에서 천천히 이야기 해주는 게 더 나을 수도 있겠다. 나는 곧 속옷을 갈아입었고, 도중에 어제 입었던 옷들이 눈에 보였다. 저 옷들이 더 이상 나한테 맞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절로 우울해졌다. 아직 내가 여자라고 되내기는것 조차도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소름 끼치는데, 이런 걱정까지 해야 한다니……. 여튼 저 옷들은 이제 내가 입기엔 너무 커진 것 같이 보였지만, 뭐 그딴건 이제 상관하고 싶지 않다. 그냥 로프가지고 묶어 고정시키고, 나머진 다음에 생각해야겠다.

 

방을 나와서 부엌의 테이블에 앉았다. 문득 부엌에 있는 조리 도구들을 보니 생각이 났는데, 혹시 요리하는 도중에 자기한테 일어난 새 변화를 알아채면 어떻게 될까?

 

........머리 아픈 상황이 연출될 것 같다. 분명 베이컨이 구워지는 와중에 절규해서 이곳저곳 뛰어다니며 난장판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걔를 진정시키는 동안 베이컨은 그대로 타버리고, 내 하루는 그렇게 거지같이 시작되겠지. ....아무래도, 그냥 자기가 일어나서 알아채도록 그냥 얌전히 기다리는 게 나을 듯하다.

 

몇분 뒤, 잭이 거실로 기지개를 켜며 나타났다. 잠옷 차림에, 나처럼 바짓춤을 로프로 묶은 상태로 걸어왔다. 잭은 의외로 꽤나 차분해 보였다. 아마 자기한테 일어난 심각한 변화를 아직 눈치 채지 못한 게 틀림없을 것이다. “어, 안녕 대시. 웬일로 이렇게 일찍 일어났어?”잭이 말을 걸어 왔다.

 

흠.... 참 재밌는 이야기다. 지난 이틀동안 잭은 날 평소처럼 ‘데이브’라고 불렀지만, 또 자주 나를 ‘대시’라고 부르기도 했다. 잭 이놈이 일부러 그렇게 부르는 것인지,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계속 부르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나는 잭이 농담삼아 일부러 그렇게 불렀기를 바랐다. 근데 잠깐,그녀석 우리가 바뀌었다는걸 알아채기 이전부터 그렇게 부르지 않았나? 아니, 언제부터 그렇게 부르기 시작한거지? 흠.... 생각할게 많아졌지만 일단 그런건 제쳐두자. 지금 잭 이녀석이 이리 차분한 이유가 더 궁금했으니까. “뭐, 그렇지. 음, 새벽녘에 깨고나선 다시 잠이 잘 안와서 그냥 일찍 일어났거든.” 내가 대답했다.

 

잭은 그대로 커피 메이커로 직행하며 말했다. “그래? 내가 알아 맞춰 볼까? 너 분명 일어나서 몸이 또 변한걸 보고선 다시 잘 수가 없었지? 그치?”

 

음? 뭐라고? 이미 알아챘었나? 난 분명 그런걸 보고선 잭이 그대로 비명 지르면서 완전히 난리칠줄 알았다. 아무래도 잭은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는 강심장 이였던 것 같다. 나는 벙찐 내색을 애써 감추고 말했다. “어... 맞아, 네가 말한 그대로야. 너도 알고 있었네? 너.... 그러니까 그 바뀐건...... 괜찮냐?”

 

“일어나기 전까지는 눈치조차도 못 챘지만 뭐, 지금은 괜찮은 것 같아.”

 

“어,어.. 난 니가 상당히 마음 상했을 줄 알았는데.”

 

“아니, 그렇지는 않았어. 조금 충격은 먹었지만. 내가 거울앞에 서서 처음 봤을때는 그대로 한 5분정도 몸이 얼어붙더라.”

 

이거 점점 더 놀라워지네. “어, 그래...”

 

“몸이 이런 식으로 변한 것을 계속 보고 살아야 한다니 정말 미칠 노릇이더라고, 정말 느낌이 이상해.”

 

“아무렴, 그렇지.”

   

“게다가 한번 거기를 펜 같은걸로 콕콕 찔러 봤는데 그것 참 기분이 이상하더라고.”

 

.........?!?뭐? “...”

 

“오해하지 마. 단순한 피로회복법 중 일부일 뿐이야. 더러 피곤해하는 녀석들의 거기 안쪽을 손가락으로 깊게 마사지 해주면 피로가 풀리거든.”

 

나는 혼란스러운 시선을 보내며 말했다. “어... 잭,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

 

“그럴리가! 농장에서 좀 살아보면 그게 얼마나 피곤한 부위인지 다 안다고. 내 말은, 요근래 내가 에반이랑 이야기 했던 ‘사라’기억나? 거기에 감염이 생긴 그 말 말이야.”

 

“으 세상에, 그곳에 감염이 생겼다는건 생각만 해도 끔찍하........ 잠깐, ‘사라’라고? 걔는 거기가 아니라 딴곳에 감염됬잖아? 분명 다리 아래쪽.......”그 순간, 잭이 말하는 그곳은 내가 생각하는 그곳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난 그 자리에서 바로 바짓가랑이를 걷어올려 발목을 내보였다. “이런 ㅆ...이젠 발굽이 되버렸잖아!”

 

“어.... 그래. 그동안 그 이야기 하고 있었잖아.”잭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이런 썅, 발굽이라고!?” 나는 바지를 내려 다리 전체를 봤다. 내 손은 아직 완벽하게 인간의 손이지만, 내 하반신의 반 정도는 완전히 말처럼 변해있었다. 내 무릎은 이전보다 더 위로 올라갔고, 발이 길어져서 발꿈치가 기존에 무릎 놀이에 있었으니, 전체적으로 역관절의 형태로 바뀌어 있었다. 또한, 바뀌어버린 발굽을 기준으로 연청색 털이 위로 올라오며 자라고 있었다. “으아 세상에, 이게 무슨 괴랄한 상황이야! 이상하다는 수준을 넘어버렸잖아! 어제부터 이랬어!?”

 

잭이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 “니가 아까 말꺼낸게 그거였잖아. 눈치 조차도 못챘어?”

 

“그냥 평소처럼 걸을 수 있어서.... 난 몰랐지....”

 

잭이 나한테 다가오며 말했다. “몰랐다고?! 어떻게 이런걸 모를 수가 있어?! 딱 봐도 알만한 커다란 일인데!”

 

잭의 지적은 예리했다. 내가 이런걸 어떻게 눈치를 못챌수가 있냐니... 하지만, 당연한 일 아닌가? 나의 성 정체성이 하루 아침에 불투명해 졌는데 그런데 쓸 겨를이 어디 있겠나? 게다가 내가 바지를 갈아입는 내내 주위는 어두웠으니 눈치를 못챌 만한 상황이건만... “어 음, 그렇지. 아마 바지에 가려서 잘 못봐서 그런 거 같아.” 난 일단 대충 둘러댔다.

 

“거두절미하고 말이야. 털이나 다른 것들이 눈에 안보여서 눈치를 못챈것 까지는 이해가 가긴 해. 하지만 발굽으로 걷는 그 이상한 감촉 조차도 알아채지 못했다고? 정말이야?”

 

잠깐만, 이것봐라? 이런 식으로 말하는것은 아직 다른 쪽 변화는 모르고 있다는 뜻이잖아? 제기랄, 나는 잭이 또 절규하면서 난리치게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아마 지금 이야기 하지말고, 좀 더 남자로서의 기분을 느끼며 살게 두는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으... 데이브, 가끔씩 널 보면 참 등신인가 싶다.” 잭이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말했다.

 

.................... 생각이 바뀌었다. 등신? 허, 오냐. 이제 그 등신처럼 너도 한번 엿먹어 봐라. “이봐 잭? 꼬리 안쪽도 좀 확인 해보는게 어때?”

 

“뭐?”

 

“꼬리. 안쪽을. 확인해봐.” 나는 잠깐 미안한 마음에 멈칫 했으나 곧 마음을 굳게 먹고 말을 이었다. “내 생각엔, 어, 거기 뭔가가 바뀌었을 거야. 그냥 속는 셈 치고 바지 내려서 확인해봐. 난 뒤돌아 서 있을 테니까.”

 

잭이 수상쩍은 듯 눈을 가늘게 뜨며 나를 쳐다봤다. “어음.... 알아는 들었다만, 수상하네. 정확히 어디가 바뀌었는데?”

 

나는 뒤돌아 그대로 눈감았다. “그냥 믿고 해봐. 걱정마, 오래 헤매지는 않을테니까.”

 

감긴 내 눈과 내 등 뒤로 잭의 발소리가 들렸다. 아마 확인해보려고 뒤도는 것일 거다. (여담이지만, 이때 잭의 발소리가 발굽소리처럼 바뀌었다는 것을 알아챘다. 내가 이걸 지금에서야 눈치 챘다는게 스스로도 납득이 되지 않았었다.) 마침내 바지끈이 풀리는 소리가 들렸고, 곧 이어 바지가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기다렸다. 한 10초동안 기다렸었던 것 같고, 그동안 어색한 침묵이 집 전체를 뒤덮었다. “어.... 잭? 괜찮냐?” 나는 눈을 조금 뜨고 뒤로 천천히 돌아봤다. 잭은 마치 브로니가 4대 금서를 처음 보았던 때 마냥 충격 먹은 눈으로 자기 아래쪽의 변화를 응시하고 있었다.

 

잭의 어깨는 움츠러 들었고, 손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으며, 충격으로 가득찬 동공의 초점은 이내 공포로 인해 흐려지고 있었다. 그의 발은 천천히 뒷걸음질 하고 있었고, 얼굴을 금방이라도 비명을 질러도 이상하지 않은 듯 사색이 되 있었다.

 

“잭.....”

 

“아아아아아아아!!!!!!!! 떨어져, 떨어지라고!!!!! 으아아아!!!!”

 

“잭, 진정해. 이거 거미 아니야. 우리 이게 뭔지 성교육시간에 배웠잖아.” 나도 덩달아 당황한 나머지 진정 시키려고 내뱉은 말 조차도 꼬였다.

 

“아아아아아아아!!!!!!” 잭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하더니, 이내 그대로 거실 카펫에 자빠져 실신해버렸다.

 

나는 급히 다가가서 그가 괜찮은지 확인해 봤다. 아니, 이젠 ‘그녀’라고 불러야 할 것 같다. 잭은 이 상황을 받아들이기 매우 힘들 테지만, 그렇다고 잭을 남자처럼 대할 수도 없었다. 이번에 생긴 변화가 여지없이 우리가 여자라는 것을 증명해주니까. 흐으으음... 뭐, 됐다. 그냥 엿을 먹는게 낫겠다. 어차피 여자끼리 여자취급 하는게 이상한 것도 아니고, 실제로 바뀐 이상 익숙해져야 할 테니까.

 

“이봐 인마, 괜찮냐?” 당연하게도 반응은 없었다. 나는 그녀의 정강이를 발로 몇 번 차보았다. 여전히 무반응이였다. “그래, 제대로 실신했네. 환상적으로 말이야.”

 

일단 배는 여전히 고프니 아침식사부터 해야겠다. 나는 기절한 몸뚱이를 향해 말했다. “이봐, 나 시리얼좀 억어도 되지? 괜찮지? 괜찮다고? 고마워,땡큐.” 나는 그렇게 잭을 뒤로한채 부엌으로 그대로 직행했다. 흠..... 이녀석이 시리얼을 어디다 놨을까? 아, 저기 큰 봉지안에 있는 저건가보다.

 

나는 봉지를 열어 보았다. “잭? 이거 무슨 시리얼이야?” 몰론 실신해 있는 잭이 대답을 할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저, 잭이 실신했다는 사실이 너무 재밌어서 무심결에 그렇게 계속 말을 걸었던 것 이였다. 어쨌든, 시리얼은 좋아 보였고, 곧장 그릇을 하나 꺼내서 시리얼을 부었다.

 

“시리얼좀 먹을래, 잭? 개인적으로, 지금은 우유에 말아서 먹고 싶지는 않다. 오렌지 주스하고 마른 시리얼 한그릇이 나같은 암말한테 잘 어울릴거다.” 나는 웃으면서 시리얼 접시를 거실로 가져간 다음 TV를 켰다. 꼬리를 좌우로 흔들면서 꼬리가 소파에 끼지 않도록 한다음 그대로 기대어 앉아서 내 발굽을 거실 식탁 위에 얹었다. “아봐 잭, 거실 식탁에 발 올려놓지 말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했었지? 근데 발굽은 어때? 발굽은 괜찮지?” 나는 농담을 한마디 하며 소파에 몸을 기댔다. 뭐, 지금 상황이 농담을 할수 있는 상황이 아니였지만,최소한 나한테는 지금 상황이 꽤나 재밌었으니까.

 

~~~~~~~

 

몇 시간 정도 그렇게 지나갔다. 잭은 다른 방으로 옮겨져서 실신했던 그대로 쓰러져 있었고, TV에선 그리 특별한 방송 같은 건 없었다. 그냥 언제나처럼 하던 뉴스나 계속 보여주고 있었다. 보아하니, 시애틀에서 폭파사건이 일어난 모양이다. 한밤중에 오래된 서점에서 정체불명의 빛과 함께 그대로 폭파가 일어났다 한다. 뭐 그런가보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은 그런데 주목할 때가 아니었고, 난 시리얼을 먹으면서 구매계획과 물품 목록을 완성하느라 바빴으니까 그런데 신경 쓸 겨를 따윈 없었다.

 

방에서 부스럭 소리가 들린다. 나는 귀를 세우고 방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잭이 일어났나보다. 분명 다시 비명소리가 들릴것이다. 하지만, 정작 방에서 들리는건 비명소리가 아닌 울음소리였다.

 

나는 쥐고있던 연필로 이마를 긁었으며 생각했다. 우선 잭에게 상담을 좀 해줘야 할것 같다. 난 내가 그녀를 잘 상담해줄수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잭을 도울수 있는 사람은 나 뿐이였다. 선택권은 없는것 같다. 난 곧장 방문으로 가서 마음을 굳게 먹고 문을 천천히 열었다. 잭은 벽에 몸을 옆으로 기대앉아서 팔로 얼굴을 가린 채 울고있었다. 나는 잭 앞에서 무릎 꿇어 앉으며 어깨에 손을 얹었다.

 

“저기, 잭..... 어.....” 으으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감이 안잡힌다. 그렇게 내 입은 굳어버렸지만, 고맙게도 잭이 먼저 입을 열어줬다.

 

“이... 이건 불공평해. 왜, 왜 내가....” 잭은 목이 메는지 말을 끝까지 잇지 못했다.

 

“나도 모르겠어. 진짜 터무니없는 일들이 일어났다고. 우린 이게 왜 일어났는지, 왜 우리여야 했는지, 심지어 어떻게 이런일이 가능한지, 우리가 뭘로 변하게 될지도 몰라. 제기랄, 더군다나 우리는 또 누가 우리같은 상황에 처해졌는지도 모르잖아. 분명 우리말고 수백 수천의 사람들이 같은 상황일거야.”

 

잭은 이 상황에 처해진게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에 마음이 조금 놓였는지 손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말했다. “진짜 그렇다고 생각해?”

 

“뭐, 내 말은, 만약 이런 미친 변화가 누군가에 의해 계획된 것 이라면, 그 대상을 우리 두명으로만 하진 않았을 거라는 거야.”

 

“왜 그렇다고 생각하는데?” 잭은 등을 벽에 기대앉으며 물었다. 하지만 아직, 나와 눈을 마주치려고 하지는 않았다.

 

난 눈썹을 올리면서 말했다. “무슨 소리야? 당연히 누군가가 저지른 짓이지. 아니면, 혹시 우리가 스스로 이렇게 변했다는 거야?”

 

잭은 자기 뒷목을 긁고 있었다. 그때 잭의 손가락이 일반적인 손보다 좀더 두껍고 커졌다는 것을 알았고, 곧 발이랑 같은 절차를 밟을 것이란걸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난 그냥 왜 우리한테 이러는지 모르겠어, 내 말은, 우린 이런거랑 아무런 상관없는 민간인일 뿐인데, 왜 우리를 이렇게 괴롭히냐고.”잭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말을 이었다. “그리고, 사실 이제는 내가 널 ‘데이브’라고 계속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다. ‘데이브’는 남자이름인데 지금은 너하고 어울리지 않는 상황이잖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 나도 같은 질문을 하려 했지. 나도 널 재키라고 불러야 하냐? 아니면 AJ라고 불러야 하냐?”

 

“으으, 재키는 꼭 5살 먹은 어린애 이름 같잖아. 그것만 빼고, 그냥 난 잘 모르겠으니까, 네가 원하면 AJ라고 불러도 돼. 아니면 그냥 그대로 잭이라 부르든가.” 잭이 눈물을 닦으며 일어났다. “뭐, 언제까지나 이렇게 풀죽어 있을수는 없지. 가자. 우리 사야할게 있었지? 가서 여자들이 좋아하는 쇼핑 한번 하고 오자고.”

 

나도 웃음지으며 같이 따라 일어났다. “그래 인마, 이게 내가아는 잭이지!, 그리고 맞아. 오늘 사야할게 산더미야. 가기 전에 음식이나 좀 챙겨가는게 좋을거야. 오늘 하루종일 싸돌아다녀야 하거든.” 난 잭의 등을 조금 두들겨 주고선 바로 거실에 소파로 돌아와서 먹던 시리얼 접시를 들었다.

 

잭은 시리얼을 먹는 나한테 계속 시선을 집중했다. 상관없긴 했지만 부엌 식탁으로 자리를 옮길때 까지 계속 쳐다보고 있으니 부담이 가기 시작했다.나는 잭에게 물었다. "뭐 필요한거라도 있어?"

 

"지금 뭘먹고 있는거야?.... 그거 어디서 났어?" 그녀가 식탁으로 천천히 다가오며 물었다.

 

"허? 이 시리얼 말이야?" 나는 하얀색 봉지를 가리켰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무런 상표나 글자도 없다는게 이상하긴 했다. 대용량의 상표도 없는 시리얼을 선뜻 사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으니까. "저기 벽쪽에 놓여있어서 열어봤는데, 냄새가 죽이더라고. 괜찮아보여서 한그릇 퍼서 먹--"

 

"너 지금 생 알팔파를 먹고 있잖아." 잭이 명확하게 한마디 했다.

 

나는 씹기를 멈추고 그릇을 내려다봤다. 생각해보면, 진짜 이상한 시리얼이긴 했다. 건조되고 압축된 초록색 덩어리 사이로 씨가 알알이 박혀있는 모습이 위화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어..... 그런건가? 음, 다들 그런거 먹지 않냐?"

 

"아니, 전혀. 그거 가축사료거든. 단백질 부족을 예방하려고 통곡물이랑 알팔파랑 섞어서 직접 만든건데. 인간은 그거 못 먹어. 몰론 새싹 종류는 먹을 수 있지만, 씨앗 종류나 네가 들고 있는 펠릿 형식으로 가공된 건 절대 먹을 수 없어. 난 네가 씨앗까지 씹어 먹을 수 있다는게 의아한데.......“ 잭이 잠깐 멈칫하더니 자기 이빨이랑 혀를 점검했다. ”오, 오 이런, 이제 이해가 되네. 있잖아, 아까 전에 우리 몸을 좀더 자세히 체크했어야 했어.“

나는 일어나서 바로 전신거울로 향했다. “어? 또 뭐야? 입안에 혀나 이빨 같은게......” 거울에 서자마자 입을 열어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바뀌었네. 으, 잘 가거라 송곳니야, 이젠 다시 못보겠구나!” 나는 입을 좀더 크게 벌려서 더 면밀히 점검했다. 내 송곳니는 평소보다 작아진 채로 앞쪽 이빨들이랑 떨어져 있었고, 그 뒤로 나열돼있는 어금니들은 평소보다 더 커져 있었다. 나는 입을 닫고 이번엔 얼굴 전체를 점검했다. 곳곳에 일어난 희미한 변화들이 눈에 띄었고, 그것들이 모여서 네 얼굴을 처음 얼굴이랑 정말 다르게 만들어 버렸다. 내 전체적인 외관은 이제 더 여자처럼 보였고, 피부는 매끄러워졌으며, 눈빛은 더 밝아졌고, 내 입, 코, 턱 등은 주둥이처럼 조금 튀어나와 있었다. 거기에 기존에 있던 무지갯빛 갈기랑 연청색 귀도 있으니,변하지 않았다고 알아채지 못 하는게 신기할 정도로 달라져 있었다. 다행히도 얼굴은 아직 인간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뭐, 이제는 ‘인간 여자‘의 인상이 됬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오늘 내내 일을 쇼핑계획을 실행하기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잭의 말대로 여자들은 쇼핑을 좋아하니까, 오늘 내내 평생 할 쇼핑을 다해보자.

 

월마트로 운전하는건 생각보다 힘들었다. 발굽으로 변해버린 발로 신발을 신는건 생각했던 만큼 힘들었지만, 새로 바뀐 다리로 페달을 밟으며 운전하는건 예상만큼 쉽진 않았다. 꼬리를 바지속에 감추니 앉는것 조차도 힘들었다. 평소처럼 내내 앉으니 계속 꼬리가 꽉 죄이는게 꽤 아파서, 결국 가는길 내내 왼쪽에 기대서 운전하는 수 밖에 없었다. 으으..... 어쨌거나 우리는 마침내 월마트에 도착했고, 다행히 누구도 우리의 변한 모습을 알아채지 못해서 문제없이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도어맨이 우리보고 “어서오세요 숙녀분들.”이라고 인사할 때는 조금 긴장했지만, 다행히도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다.

 

“잭, 기억해. 그냥 웃으며 고개만 끄덕이는 거야. 우린 주목받을만한 짓을 하면 절대 안 돼.” 나는 후드 티와 긴 청바지를 입고 있는데, 지금 같은 5월에 입기에는 조금 더운 복장 이였다. 하지만 이 우악스러운 머리와 귀를 숨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입어야 했다. 그러니 더 이상 주목받으면 그건 이 복장이랑 시너지를 내서 곤란한 상황을 만들기에 충분할 것이다.

 

“알았어. 하지만 맹세 하건데, 만약 어떤 중고딩 녀석이 나보고 휘파람이라도 불면, 계획은 무산되고 그놈은 피 토할 때 까지 나한테 쳐 맞을 거다.” 잭은 청바지에 트랙자켓을 입고 있었다. 머리카락는 금발이라 상관없었지만 귀는 가려야 했으니까 머리에 야구모자 쓰고 있었다.

 

“그건 포니스럽지 않잖아.” 나는 키득거리면서 말했다. 그리고 카트를 밀면서 식품 코너로 향했다. 목록에는 녹색식품 같은건 빠져있지만, 그냥 그것들이 오지게 맛있게 보여서 그대로 신선식품 코너로 밀고갔다.

 

잭이 과일을 카트에 골라담으면 말했다. “포니스럽다? 그래, 난 항상 그게 궁금했지. 이 변화들이 신체적인 부분만 바꾼건지, 아니면 정신적인 부분까지 바꿔버린건지 말이야.”

 

“하, 실망스러운 목소린데?” 그 ‘신선식품’들을 카트에 담은채로 다음 코너로 이동하는 동안 눈썹을 올리며 한마디 해줬다.

 

“워워, 오해하지마.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기억이 마음에 안드는건 아니야, 그냥 좀 궁금한것 뿐이야.” 잭이 주머니에서 목록을 꺼내며 대답했다.잭은 목록을 보더니 건조식품 진열대를 가리켰고, 그곳에 들어서자, 곧장 설탕봉지와 밀가루봉지를 하나씩 들었다.

 

나는 잭이 든 설탕봉지를 보며 다른 쪽에 진열돼있는 각설탕 상자를 하나 집었다. 우리가 포니나 말에 대해서 알아봤자 거기서 거기겠지만, 난 일반 설탕을 살 바엔 각설탕이 낫다고 생각했다. “아마 우리 카트하나가 더 필요하게 될 것 같아. 그리고, 맞아. 네 말마따나 우리의 생각도 소소한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곧장 나는 내 꼬리를 떠올렸다. 냉철하게 생각해보면, 일반 사람이라면 자기몸에 자라난 이 꼬리를 보면서 두고두고 기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떤가? 나는 꼬리를 좋아하고 있었다. 그 사실은 내 정신적인 면이 변했다는것을 정확하게 증명해주었다.

 

잭이 나를 바라보면서 물었다. “정말? 정신변화를 눈치챘다고? 뭘 보고 그리 생각했는데?”

 

나는 머리를 긁으며 잠시 생각했다. 나야 내 몸에 달린 포니 꼬리나 귀 같은걸 좋아한다지만, 잭은 또 자기 ‘포니몸’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기에 섣불리 그걸 예를 들 수도 없었다. 음.... 뭐 다른게 없나..... 아! “ 그래 잭, 너 이틀 전에 우리 집에서 나를 갑자기 대시라고 불렀잖아. 그건 뭐겠어?”

 

잭이 밀가루랑 설탕을 카트에 가득 감고 다음 진열대로 끌며 말했다. “맞아, 나도 그런 것 같아. 하지만 난 네가 가지고 있는.......” 잭이 잠깐 멈칫하더니 잠깐 내 사타구니에 고정됬던 시선을 돌렸다. 난 반사적으로 다리를 돌렸고 곧장 얼굴이 붉어졌다. “....... 에헴, 네 몸에 자라난 그 ‘포니스러운 물건’이랑 잘 어울려서 그런 거야. 네 머리랑 다른 것들이 당연하게도 대시를 연상시키잖아.”

 

아니다. 분명 뭔가가 더 있었다. 나는 머리를 계속 굴렸다. 어딘가에서 희미하게 각인된 기억을 떠올리려 했다. 그리고 그게 머릿속에서 빛나는 순간,나는 중요한 맹점을 알아차렸다. “잭... 넌 이 모든 게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나를 대시라고 불렀잖아. 심지어 큐티마크가 생기기 전에도 말이야............. 분명 생일파티때 그랬어!” 머릿속에 기억의 조각이 맞춰지기 시작했다.

 

잭이 뒤돌아서 나를 바라봤다. “뭐? 그건 말이 안 되잖아! 모든 건 큐티마크가 생긴 이후로 시작됐다고! 내가 네 마크를 보기 전에, 왜 너를 대시라고 부르겠어?”

 

난 잭에게 걸어가서 그녀의 양 어깨를 잡았다. “스카치! 기억나? 우리가 스카치를 들이킬때 넌 30초가량 넋이 나갔어. 그때 나를 멍하니 보면서 대시라고 불렀잖아.”

 

잭이 손톱을 씹기 시작했다. “내가 정말로 그때 널 대시라고 불렀어? 그것 참 이상한 일이네. 그래서? 그건 그냥 스카치에 취해서 그랬을 수도 있는 거지.”

 

“뭐? 아니야, 스카치는 아무 상관이 없어! 넌 스카치를 마시기 전에 넋을 놨다고! 기억안나?” 그순간 잊고있던 한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그때 네가 정확히 25살이 됬던 그 순간에 일어났어! 이런 제기랄, 그게 이 모든것의 원인일수도 있다고!”

 

잭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그래, 네 말은 모든 남자들은 25살 생일이후로 암말로 변한다는거야? 미안한데, 그건 그거대로 말이 안 돼는 이야기잖아.” 잭은 마침 근처에 있던 의약품 코너로 카트를 세웠고, 우리는 진통제나 응급처치물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확실히 그녀의 말대로다. 25살이 됐을 때 일어났다 해도 그것을 뒷받침할 증거나 근거가 전무한 상황이니, 말이 안 되는 것은 사실 이였다. “봐봐 AJ,내가 말한 것 들을 잘 생각해봐, 분명 원인들 중에 일부일거야.”

 

잭이 양손가득 응급물품을 들고 와서 카트에 담았다. (돈이 엄청 깨질 것 같았다.) “대시, 말해두는데, 그 나이문제는 그저 우연일 뿐이야. 네 말대로라면 정확히 25살이 됬을때 각자 정신을 놓았다는 이야기인데, 만약 그렇다면 에반은 어떻게 설명 할 수 있는데? 나는 이모양 이꼴이지만, 에반은 문제없이 어제 시카고로 떠나기 까지 했잖아?”

 

잠깐. “에반? 하지만, 그녀석 생일은....” 생각해보자, 에반 생일이 언제였더라? 그녀석이 좀더 형인건 알고 있는데, 생일이 갑자기 기억이 안나네....

 

잭이 나를 보더니 한숨을 한번 내뱉고 말을 시작했다. “우린 쌍둥이라고. 에반이 나보다 몇분정도 더 나이를 먹었지. 내가 이전에 이야기 하지 못했다면 미안하다. 왠진 몰라도, 에반은 우리가 그런 쌍둥이였다는걸 다른 사람들이 알아채게 하고 싶어하지 않았거든. 여튼 에반은 사람들이 우리를 형제로 보게 했어. 쌍둥이가 아니라.”

 

별일이네, 그런걸 숨기려고 하다니..... 뭐 어쨌든 에반은 4일뒤에 돌아온다고 전화로 이야기 했었으니까........ 음? 전화? 잠깐, 분명 에반이 전화했을때도 이상한 점이 있었는데. 그때 에반이--

 

“레인보우 대시!!!!”

 

뭣!? 잭이랑 나는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고, 내 귀는 그 소리가 어디서 들렸는지 알아내려고 자동으로 후드 안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많은 생각이 빠르게 지나갔다. ‘누가 어떻게 나를 그 이름으로 부르는 거지? 오 젠장, 혹시 이 모든일을 일으킨 녀석인가? 아니면, 이 일들의 해결 방법을 아는 녀석인가? 나는 어떻게 찾은거지? 분명 원인제공자니까 나를 알아차린게 분명할 거......’ 그 목소리의 주인공은 곧바로 우리 앞으로 왔다. “아.”

 

“우와, 엄마 봐봐! 레인보우 대시야! 헤헤헤, 저기 머리카락좀 봐!” 귀여운 8살 정도의 소녀가 우리한테 뛰어와서 놀라운듯 나를 가리켰다. 곧 꼬마의 엄마도 창피해하며 시야에 들어왔다. 난 잭에게 미소 지으며 그저 어깨를 으쓱했다. 우리가 그냥 적절하게 연기해준다면 별일 없을 것이라고 눈길을 줬다. 난 그냥 코스프레한 사람인 것 처럼 행동했다. 다행히, 저 둘은 우리들의 몸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점을 아직은 눈치 못했것 같았다.

 

애엄마는 그 애의 손을 잡으며 우리한테 말했다. “정말 미안해요. 애가 갑자기 대시 목소리를 들었다며 주위를 돌아다니다가, 당신 머리를 보고 그대로 쫓아가버리지 뭐에요. 우리애가 그 TV쇼를 정말 좋아하거든요.”

 

잠깐, 이 애가 내 목소리를 듣고 찾았다고? 이런 제기랄. 설마 목소리까지 변할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는데. 으으, 일단 둘러대야겠다. “어 안녕 꼬마야?날 찾아다녔다고?” 허, 내 목소리는 평소에 내던것 처럼 들렸다. 내가 생각하기에는 말이다. 혹시 내가 알아채지 못할정도로 서서히 일어난 변화인걸까? 아으, 일단 걱정은 나중에 해야겠다. 우선 우리가 왜 이모습을 하는지 둘러대야 했으니까. “나랑 내 친구는 어.... 코스튬 콘테스트에 가는 길이였거든!” 난 잭의 팔을 잡아 당기며 웃었다. “애플잭한테 인사하렴.”

 

“안녕 슈거큐브?” 잭이 웃으면서 말했다. 최대한 애플잭이랑 비슷하게 행동하려고 자기딴에는 최선을 다하는것 같았다.

 

“애플잭 너도 있었어?” 그 아이는 아까보다 더 쇼크를 먹은 듯 보였다.

 

“얘야 이리온. 그냥 지나가자꾸나. 엄마가 낯선 사람이랑 이야기 하지 말랬지?” 엄마는 아이의 손은 잠아 끌고 가려 했지만, 그 애는 손을 뿌리치고 달려와 내 다리를 안았다.

 

소녀는 나를보며 말했다. “너희들 여기 있으면 안되잖아!” 소녀의 얼굴에는 속상함이 서려있었다. 나는 점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 소녀가 안아버린 내 다리는 이젠 더 이상 일반적인 사람의 다리의 형태가 아니기에, ‘혹여나 들켜버리면 어떻하지?’라는 생각이 엄습하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니, 얘야?” 잭이 미소를 간신히 유지하며 물었다. 다만 잭 또한 얼굴에 긴장감이 서려있었다.

 

“빨리 디스코드를 막아야지! 가서 셀레스티아 공주님을 구해야지! 빨리 원래대로 돌려놔야해!” 아이는 눈물을 보이며 말했다.

 

“그만 얘야, 이제 그만하고 이리오렴.” 엄마는 울고있는 아이를 다리에서 떨어트리려 했다.

 

“빨리 친구들 만나서 디스코드를 막아야지! 꼭, 꼭 막아야 하잖아!” 아이가 눈물을 손으로 닦아낼때 비로소, 내 다리에서 떨어졌다. 난 그저 계속 짓던 미소를 유지하며 그 아이의 엄마를 바라봤다.

 

아이엄마가 마안한 얼굴로 말했다. “정말, 정말 미안해요. 우리애는 단신들이 단순히 코스프레 하는것 이라는걸 잘 모르나 봐요. 그리고 그 쇼가 그런 식으로 안좋게 끝난걸 아직도 속상해 하고 있거든요.”

 

“네, 정말 슬프게 끝났었죠. 이해해요, 어머니. 뭐 만나서 반가웠어요.” 나는 억지로 아이를 끌고 가는 엄마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했고, 곧 모녀가 사라진 모퉁이에서 아이를 꾸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잭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휴 그것 참 곤란했었다.”

 

잭은 계속 그 모녀가 사라진 쪽의 바닥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깊은 생각에 잠긴 듯 했다. 얼마간의 정적이 지난뒤 잭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넌 어떻게 생각해?”

 

“뭐가? 저 꼬마애 말이야? 귀여운 애였지. 사실 걔가 가까이 왔을때 내 귀나 발굽을 알아챌까봐 조마조마했어.”

 

잭은 카트를 다시 밀기 시작하며 다른쪽 진열대로 가기 시작했다. “그래, 걔는 진짜로 너를 대시라고 생각했었어.”

 

나는 목을 긁으면서 잭의 뒤를 따랐다. “그래, 진짜로 그렇게 생각한것 같네. 그럴수도 있잖아? 지금 나한테 달린 이 머리카락, 귀, 그리고 바뀐지도 눈치채지 못한 목소리까지 보면--”

 

“내 말은, 그 애는 네가 대시랑 비슷하게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는 거야.” 잭이 말을 끊었다. “걔가 너를 진짜로 ‘레인보우 대시’로 생각했다는 거야. 클론도 아니고, 닮은것도 아니고, 포니로 변한 사람같은것도 아닌, 정확히 레인보우 대시로 너를 인지했다는 말이야.”

 

나는 눈알을 굴리며 말했다. “그랬지, 그리고 걔는 다행히 8살 먹은 꼬마에 불과했고 말이야. 분명 달도 치즈로 만들어져 있고, 아기도 황새가 물어온다고 믿고 있을걸?”

 

잭은 계속 카트를 밀었고, 가끔씩 지나가는 진열대에서 물건을 집어 카트에 넣었다. “데이브, 아이들은 가끔씩 어른들이 못보는 것은 보기도 한다고.”

 

“그래, 그렇겠지. 하지만 난 만화캐릭터가 아니잖아? 나한테 있는 기억은 지난 인간으로서의 25년치 기억뿐이고, 포니로서의 기억은 조금도 없거든?난 확실히 인간이라고. 그리고 네가말한건 내가 오늘 들은말 중에 제일 터무니없는 말에 불과하고 말이야.”

 

잭이 카트에 마지막 붕대상자를 담고선 의약품 코너를 떠나기 시작했다. “그렇게까지, 방어적으로 굴지 않아도 돼. 그냥 생각을 해보자고. 아까 너처럼 여러 가지 가설을 세워보자는것 뿐이야.

 

확실히 맞는 말이지만, 내 존재를 부정하는 말을 그렇게 말하니 심기가 불편해졌다. 그래서 나름 한마디 하려는 순간, 내 시야엔 아까 떠나왔던 의약품 코너에 있는 뭔가 들어왔다. “워, 잭 기다려봐.” 나는 그대로 다가가서 하나를 집어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다.

“유니버설 커프. 이 팔찌는 아이들, 혹은 손 힘이 약하거나 부상을 당한 분들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단순하게 팔목에 차는 것으로 다양한 물건들을 벨크로로 고정해서 쓸수 있죠. 식기도구, 칫솔, 펜, 다른 모든 도구들을 불편함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드립니다.”

 

잭은 어느새 내 바로 뒤쪽까지 따라와 있었다. “와 대박이다. 이거 진짜로 포니가 쓰기에 완벽한 것이잖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렇지. 솔직히 네가 이걸 TV 쇼에서 못 봤다는게 좀 놀랍네? 발굽에 끼워서 펜이나 포크를 사용했었잖아? 그런것 처럼 이것도 분명 나중에 유용하게 쓰일거야.”

 

난 그대로 2개 집어서 카트에 담았다. 그런데 잭이 그걸 보고 물었다. “2개만 사게?”

 

나는 눈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쓸 사람이 우리 둘밖에 없지 않아? 얼마나 사려고?”

 

잭이 어깨를 으쓱했지만, 다른 언쟁을 하려 들지는 않았다. 그녀는 조용히 카트를 다시 밀기 시작했다. “모르겠어. 혹시 모르지, 우리같은 사람을 더 만나게 될지 말이야.”

 

“뭐, 그러면 지들끼리 자기 꺼 사오라 그래. 안 그래도 이거 개당 20달러나 하는 비싼 거라고!” 난 카트를 얼핏 봤다. 카트는 갖가지 물건들로 인해 가득 차다 못해 흘러넘칠 지경 이였다. 물건 값도 족히 1000달러는 될 것 같았다.

 

잭이 웃으며 말했다. “돈좀 더쓰자고. 어차피 앞으로 영영 쇼핑 못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맞는 말이네.” 내가 대답했다. 우리는 화장품-욕실용품 매대를 지나가고 있었고, 거기 있는 물품중 하나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와 세상에, 잭 잠깐만. 살만한 게 더 있어.”

 

잭이 물품목록을 보고 모르겠다는 듯 머리를 긁적였다. “어, 살만한 거 뭐?”

 

“이리와봐, 여기 어디 있었는데...... 아 하!” 나는 곧장 하나를 들고 잭에게 가서 보여줬다. 그것은 바로 갈기와 꼬리털 전용 샴푸였다.

 

잭이 그걸 보더니 킥킥거리면서 물었다. “진심이야? 진심으로 그러는거야?”

 

“아무렴. 난 항상 이 샴푸를 보면서 ‘저거 포니들이 잘 써먹겠다.’고 항상 생각해왔다고. 이제 이걸 사서 실제로 써볼 때가 됐다 생각하는데?”

 

잭이 머리를 흔들며 핀잔을 줬다. “너 같은 괴짜도 없을 거다.” 그러고선, 평소처럼 카트를 다시 밀기 시작했다. 곧 우리는 의류매장에 들어섰다. 매장은 2가지로 나뉘어 있었는데, 잭은 본능적으로 ‘남성’의류 매장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나는 멈춰 서서 다른 쪽에 있는 ‘여성’의류 매장을 가려고 생각했다. “어.... 잭? 난 이쪽 여성의류 매장 좀 둘러보고 갈게. 얼마 안 걸릴 거야.”

 

뒤에서 또 들려오는 잭의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왜 여기에 들어왔는지 확실하진 않았다. 더욱이 농장안에서 걸리적거리기만 할 탱크 탑이나 스커트류를 보니까 말이다. 나는 몸을 돌려 속옷 매대로 갔다. 머릿속 한편에선 ‘하하, 이젠 여자 속옷도 챙겨 입을 생각을 하는 것 보소.’라는 생각이 맴돌았다. “조용히 해라 머리야. 그리고 사실 그럴 생각도 없었어. 포니들은 어떤 속옷도 챙겨입지 않거든.”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웃었다. 하지만, 사실 방금 생각한 게 중요한 문제이긴 했다. 솔직히 우리가 포니로 변하면 옷 같은걸 입을 필요가 있나? 난TV쇼 안에서는 옷이라는 것이 단순한 치장 및 장식품정도의 역할만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는 어떨까? 뭐라도 입어야 하려나?음............ 아무래도 여름에는 그냥 없이 지내도 될 것 같지만. 겨울에는 자켓이나 부츠같은 다른 옷가지들을 걸쳐야 하겠지. 여기 근방을 1월경이면 영하정도는 우습게 내려가니까.

 

......... 잠깐, 내가 뭐랬지? 겨울? 1월? 지금은 봄이잖아? 정말로 그때까지 이런 식으로 변한채로 살아가려나? 마음 한켠에서는 이런 변화가 길어야 일주일 남짓한 시간안에 끝날거라고 말해왔지만, 이런게 그렇게 가까운 일 안에 고쳐진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그 사실은 부정하고 싶었지만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였다. 우리가 이런 기괴한 모습으로 변화되기 시작한 이래로, 변화가 멈춘다는 명확한 신호나 증거도 없었고, 아직 이런 일이 일어난 원인같은 다른 단서로 찾아볼수 없는마당에서 우리 스스로 이 변화를 고칠수 있는 수단도 당연히 없었다.

 

일단 여기서 혼자서 이러고 있는건 여러 의미로 위험할것 같다. 당장은 잭이랑 합류하는게 좋겠다.

 

이후의 월마트의 일정은 별다른일 없이 무난했다. 우리는 물품들을 계산대에 올려놓고 계산을 했고, 전체 비용은 총합 2400달러가 나왔다. 결국엔 물품을 반으로 나눠서 따로 계산을 해야 했는데, 어쩔수가 없었다. 잭의 신용카드 한도는 최대 2000달러까지 였으니까. 그래도, 다행히 이번에 사온 보급품들로 생각보다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이후 우리는 바로 근처에 있는 대학부속 서점으로 갔고, 거기서 바로 말과 관련된 모든 서적들을 싸그리 사들였다. 해부학 책, 수의학 책에다가 말 사육을 위한 식이요법, 운동법, 건간증진법이 담겨있는 책도 한 6여권 정도 샀다. 사실 이것들이 실제 말이 아닌 포니들한테 얼마나 먹힐지는 미지수였지만, 최소한 없는것 보단 나았다.

 

이후 우리는 곧 마지막 목적지인 팜앤플릿에 도착했다, 상점 간판에 대문짝만하게 ‘농부들을 위한 백화점’이라고 쓰여있었다.

 

잭이 카트를 빼서 나한테 주며 말했다. “이번엔 네가 좀 밀어라. 난 월마트에서 내내 밀고 다니느라고 다리가 무진장 아프거든.”

 

난 카트를 잡고 잭을 흘낏 봤다. 솔직히 엄살이란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일단 물건사는게 우선이니까 개의치 않기로 했다. “이번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거야. 몇몇 야외용품만 사가면 끝이니까.”

 

우리는 곧장 주요 진영대로 가서 못, 공구, 손전등 같은 각종 철물 및 공구들을 담았다. 그리고선 정원용품 매대로 가서 다양한 채소 씨가 든 봉지를 몇 개 담으려는 순간 등에서 날카롭게 찔린듯한 통증을 느꼈다. “아아아!!!” 갑작스런 통증에 들고있던 물건도 떨어트리고 등을 움켜쥐었다. 등에서 뭔가가 느껴졌다.

 

잭이 내가 떨어트린 봉지를 들고 말을 걸었다. “무슨 일이야?”

 

“모르겠어, 근데 진짜 아파. 뭔가가 내 등에 있나봐.” 난 등쪽으로 손을 뻗었지만 아픈곳 까지 손이 닿지는 않았다. “이봐, 내가 셔츠를 올리면 네가 등을 좀 봐줄래?”

 

“야 인마, 넌 지금 20대 여자몸이라고. 농사짓는 남정네들로 가득한 가게안에서 셔츠를 올리겠다고?

 

........... 정곡이다. 난 아직 여자같은 가슴을 가지지는 않았지만, 이런 곳에서 상의탈의하는건 좋은 선택이 아니라는건 충분히 공감했다.

 

“알았어, 그러면 나 잠깐 화장실 좀 갔다 올게. 저기 있는 동물사육 코너에서 만나자.”

 

나는 바로 근처에 있는 화장실로 지체하지 않고 달려갔다. 중간에 ‘신사’쪽과 ‘숙녀’쪽 중에 어느 곳으로 가야할지 잠깐 망설였지만, 이내 여자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다는 걸 떠올리고 그대로 여자화장실 앞에 섰다. ‘이런, 이런 곳은 처음이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그대로 문을 열었다.

 

세면대에서 어떤 여자 한명이 손을 씻고 있었고, 그 장면을 보고 잠깐 몸이 얼어붙었다. ‘으으, 아무 일도 없기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떨리는 마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그대로 세면대를 지나쳐 걸어갔지만, 근방이라도 저 여자가 뒤돌아서서 날 보고선 비명 지르며, 여긴 여자화장실이라고 앙칼지게 말할 것만 같았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난 그대로 곧장 화장실 칸막이 안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그러고선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체크하고선 상의를 벗기 시작했다. 그런데 탈의는 생각보다 조금 더 힘들었다. 손가락에 유연함이 예전보다 못한 것 같았다. 그냥 일반적인 셔츠를 벗는건 아무런 어려움이 없었으나, 후드 티에 있는 단추를 하나하나 푸는게 의외로 훨씬 고역이였다. 어쨌거나, 마지막으로 내 속셔츠까지 벗고나선. 내 몸을 샅샅히 살펴보기 시작했다. “윽, 정말 다르게 바뀌었네.”

 

2가지 소식이 있었다. 좋은 소식은, 여자같은 가슴이 자라질 않았다는 것이고, 좋지못한 소식은 이젠 젖꼭지 마저도 사라졌단 것이다. 나는 곧 바지를 내렸고, 뒤이어 속옷 마저도 벗어서 몸 곳곳을 좀 더 세밀히 봤다. “빨리 농장으로 돌아가야 하겠어.” 무의식적으로 한마디 내뱉었다. 상황이 나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 상황은 내 생각보다 더욱 나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연청색 털은 이미 다리 위쪽까지 자라나 있었고, 다리에선 기형적으로 변해버린 탓에 끊임없이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무릎은 허리 바로 아래까지 올라가버린 탓에, 완전히 포니와 똑같은 역관절의 형태가 돼있었다. 아무래도 다리는 이제 더 이상 이족보행에 적합하지 않게 변해버렸나 보다. 거기에다가, 연청색 털은 심지어 골반을 거의 덮어버릴 정도로 많이 자라나 있었다. 오, 거기다 한가지 더, 없어진 줄만 알았던 젖꼭지를 골반 부근에서 찾았다는 점이다. 내 허리선 부근에서 야트막하게 자리 잡은 그것들은 더 이상 인간의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뭐, 솔직히 말하면 이제 내 허리 아래쪽으로는 더 이상 인간의 몸으로 볼수 없게 되었다. 나는 벽에 머리를 지긋이 기댔다. 으으, 이렇게까지 변해버렸는데 누구도 눈치 못챘다는게 오히려 더 신기할 따름이였다.

 

잠깐, 내가 이거살피려고 왔던가? 맞다, 등. 난 곧장 등 쪽으로 손을 뻗어 그것을 만져 보았다. 등 뒤로 고개를 돌려서 볼 순 없었지만, 분명 등에서 뭔가 없었던 뼈 같은게 길게 자라난 것 같았다. 난 이게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해봤다. ‘도데체 이거 정체가 뭐야? 포니들을 분명 이런 이상한걸 가지고 있지 않았던........ 잠깐, 난 페가수스니까....... 날개인가...’ 나는 이마를 탁 쳤다. 내가 무엇으로 변하고 있는지 생각하면서도 날개에 대한건 까맣게 잊고 있었다. 지금 날개가 자라고 있는 것이였다. ‘허, 이런...... 곧 있으면 날수도 있는건가?’ 손가락이랑 마지막 남은 인간다움을 잃는 대신에 날 수 있는 능력을 얻는다? 꽤 공정한 것 같았다.

 

맞다, 이런 날개를 가지는건 멋지고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시기는 내가 생각한 때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난 더 이상 우리가 변하는것에 대하선 걱정하지 않게 됐지만, 이제는 다른 사람들이 우리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채고 경찰을 부르거나 하지 않을까 싶은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우린 가능한 빨리 이 쇼핑을 끝내야 한다.

 

난 다시 옷을 챙겨입은 다음, 매장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옷 안에서 덜 자란 날개가 눌리는게 느껴진다. 여튼 나는 잭을 만나러 그대로 동물사육 코너로 직행했다. 잭 이녀석은 어딨냐........ 아, 저기있군. 잭은 진열대중 한곳에 서서 다양한 빗을 들며 서로서로 비교하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잭한테 다가갔고, 잭은 인기척을 느꼈는지 나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때 잭은 놀란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들고 있던 빗을 떨어트렸다.

 

“야 인마! 너 지금 정신 나갔어?!” 잭은 낮은 목소리로 조용히 외쳤다.

 

“뭐?” 갑자기 혼란스러웠다. 잭 얘는 뭐 때문에 이런대?

 

“후드 말이야! 후드 안 쓰고 있었잖아!” 잭은 다급하게 내 후드를 잡아 도로 내 머리에 씌웠다.

 

“아 쉣, 맞다. 내가 후드를 벗고 다녔었냐?”

 

“그래, 이 정신 나간 자식아! 네 미친 파랑귀는 1마일 밖에서도 보이겠다. 좀 더 조심하라고. 안 그래도 머리 색깔도 잘 섞인 무지갯빛이라서 눈에 띄기 쉬운데.”

 

난느 고개를 푹 숙였다. 구구절절 맞는 말이다. 아까 실수는 진짜로 멍청한 짓거리였으니 말이다. “미안해, 내가 그런걸 잊을 줄이야. 잠깐 딴생각하느라 정신이 팔렸나봐.”

 

난 화제를 돌리기 위해 잭이 보고있던 빗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그건 어디다 쓰려고 보고있었냐?”

 

“우리가 써볼라고.” 잭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그녀는 그대로 그 빗을 주워서 카트에 담았다.

 

난 그 빗을 보면서 거기에 붙어있는 태그를 읽었다. “말 손질용 빗: 당신의 말의 갈기나 털을 좀더 빛나고 찰랑거리게 만드세요.” 나는 눈꼬리를 올리며 잭을 다시 쳐다봤다. 왜냐면, 잭은 이런 외모관리에는 영 신경을 쓰지 않았었기 때문이다.

 

“이봐 형씨, 우리가 농장으로 돌아가게 되면 말이야, 다른 마구간에도 말이 있을텐데, 우리는 좀 깨끗하게 지내서 그런 말들이랑 구별되어야 하지 않겠냐?” 잭이 카트를 밀어 다른 통로로 가며 말했다.

 

“오, 그런 짓을 굳이 안 해도, 구별 하는건 별로 어렵지 않을걸? 특히나 나같이...... ‘날개’달린 말을 없잖아?”

 

순간 잭의 눈썹이 올라갔다. 그러고선 바로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등에 있던 통증이 그거 때문이였냐? 하, 이 부러운 개자식, 날개도 가지고 말이야. 나는 가진것도 없는 어스 포니인데 말이야. 아니지, 어스포니만의 체력이 있었지. 으흐흐 그것 참 재밌겠구만.”

 

난 킥킥거리면서 말했다. “뭐, 거기다가 농사도 잘 짓잖아!”

 

“난 이미 농사같은건 잘 짓는다고! 그짓을 25년동안 했는데!” 잭이 대답하면서 손사래를 쳤다. 그 손사래의 반은 짜증이, 반은 즐거움이 묻어있었다.

 

좀 재수 없는 말투였지만, 맞는 말 이였다. 잭이랑 에반의 농장에서 기른 옥수수는 전국에서 알아주니까. 거기다 농약이나 비료 없이 순수한 유기농으로 길러내는 짓을 잘만 해내니까, 자기 농사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오오오, 그거 괜찮아 보인다!” 나는 잭이 지나가던 진열대에 있는 이상한 철제도구를 들고 말했다. “이거 한번 봐봐 대시, ‘이 발굽 청소기는 발굽 사이에 낀 먼지, 진흙, 눈 따위를 제거하는 것을 도와줍니다. 주기적인 관리로 발굽을 부드럽고 깨끗하게 만드세요.’라니 꽤 유용할 것 같지 않냐?” 잭이 말했다.

 

나는 어떻게 될지 상상했다. 이게 들어가서 발굽 안 곳곳을 긁어낸다고? “우와 세상에, 그것 참 놀랍겠는데.” 나는 긍정하며 하나 더 집어서 카트에 담았다.

 

“음... 도와드릴까요?” 낯선 목소리가 주위에서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건장한 매장 종업원이 팔짱을 낀 채로 몇 피트 떨어진 곳에서 서있었다. 온 몸의 털이 곤두선 기분이다. 이 남자는 우리가 대화하는 걸 언제부터 듣고 있었던 걸까?

 

“어.... 안녕하세요. 그리고 딱히 도움은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제 친구랑 같이 친구 농장에서 쓸 물건을 사는거라서....”

 

“알겠습니다. 필요하신 게 있으시다면, 저를 불러주세요.” 그 남자는 천천히 팔짱을 풀고 그냥 그대로 가버렸다.

 

조금 뒤, 잭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 아무래도 후다닥 끝내고 가아겠다.”

 

“응.....” 경각심이 일었다. 나는 가지고 있던 목록을 힐끗 봤다. 아직 사야할 물건이 산더미였지만, 전부 산다고 시간을 허비했다간 상황이 크게 곤란해진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그래서 사실상 나머지는 전부 생략하고 이곳을 떠야 했지만, 제기랄 이 물건 한 가지는 어떻게 생략하고 넘어 갈 수 없는 것 이였다. “딱 한 가지만 더 사고 사가자, 잭. 동물의료물품 코너가 어디 있는지 알아?”

 

잭이 그 말을 듣고선 빠르게 동물의료물품 코너로 안내했다. 그곳은 자그마한 진열대 통로였는데, 한쪽에는 몇몇 작은 유리문 냉장고 안에 수십가지의 약이든 유리병이 쌓여 있었다. 잭이 냉장고를 열고 라벨을 읽기 시작했다.

 

“좋아 한번 보자고, 말 뇌염, 그래 뭐, 이런 병에는 걸리고 싶지 않으니까.... 피부사상균? 부제증? 백선곰팡이? 첨족 연쇄상구균?”

 

잭이 이것저것 보면서 이런저런 약을 카트에 담았다. 나는 그중 한 병을 들고 그 라벨을 읽었다. ‘말 뇌척수염 백신: 동물전용’ 난 얼굴을 찡그리며 도로 카트에 담았다. 그러고선 잭한테 물었다. “이봐 잭, 이런 거 쓸려면 수의사 면허같은거 필요하지 않아?”

 

잭이 피식하며 대답했다. “풉, 장난해? 이런 건 인간을 대상으로 한 게 아니라서 굳이 그런 것이 필요 없어도 되거든? 누구나 살 수 있고, 사용하기도 쉽게 만들어진 거라고. 우리도 옛날부터 새로 태어난 새끼들한테 항상 주사해 왔던 거야.” 잭이 몇몇 약을 더 집으면서 말했다. “혹시 보툴리누스 백신 필요하냐? 그래 필요한 것 같네, 이것도 넣는다.” 잭이 마침내 냉장고 문을 닫았다. 양손에는 각종 약병이 가득 들고선 말이다.

 

나는 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물었다. “그거 전부 사려고? 이게 얼마나 미친 짓인지는 알긴 하냐?”

 

잭은 웃으면서 카트에 담긴 변들을 정리했다. “잘못된 성별로 깨어나고, 네가 알팔파를 먹는걸 보고, 발굽으로 걷는 방법을 배운 이후로 난 계속 미쳐있었다네, 친구. 아무래도 우리가 하는 미친 짓거리에 대해 생각하는 건 내 뇌마저도 ‘이런 천하의 호로새끼가...’ 하면서 포기한 것 같다.”

 

“있잖아, 네가 알팔파 이야기 꺼내니까, 배고파지지 않았냐?” 나는 허기가 지기 시작한 배를 움켜쥐면서 아침에 먹었던 알팔파가 얼마나 맛있었는지 떠올렸다.

 

“맞아, 솔직히 나도 똑같은 생각 하고 있었지. 빨리 가자. 지금 뱃가죽이 등에 들러붙었다고.”

 

난 카트를 그대로 계산대로 몰고 갔고, 그동안 잭은 농장에 있는 각종 채소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아, 그리고 아마(flax, 亞麻)꽃 씨앗도 조금 있었지. 그거도 조금 먹어볼수 있을거야. 말들이 항상 그 씨앗을 즐겨 먹었으니까, 그게 얼마나 맛있을지 상―” 나는 슬쩍 잭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조용히 하라고 손짓했다. 내가 물건을 올리던 계산대에서는 어떤 나이 지긋하신 여자 계산원이 물건들을 계산하고 있었고, 방금 잭이 말한 이야기를 그대로 들었다면 상황이 얼마나 거지같아질지는 불보듯뻔한 일이니까.

 

잭은 알았다는 듯 입을 닫고, 곧장 계산대 위로 물건을 올리는걸 돕기 시작했다. 그리고 계산원이 물건을 스캔하는 동안, 주위 선반에 놓인 농장잡지가 눈에 들어왔다. “오오오, ‘에쿠스’에 대해선 들어본건 없는데.” 나는 그 잡지를 들고 보면서 말했다. 어떤 말 주인에 대한 이야기가 실려 있었는데, 겉표지에는 어떤 검정색 숫말이 그려져 있었고, 헤드라인으로 ‘어떻게 종마의 털을 빛나게 유지시키는가?’와 ‘말 옆구리의 응어리는 질병의 신호’라고 적혀 있었다.

 

잭도 나만큼 그게 흥미가 있었는지 옆에 와서 같이 보고 있었다. “오! 23페이지에는 꼬리 청결을 위한 10가지 팁이 실려있잖아!”

 

“에헴. 452달러 23센트 되겠습니다.” 계산원이 물품 스캔을 끝내면서 우리를 봤다. “여기 근처에서 오신 분들을 아니죠? 그렇죠?”

 

나는 지갑을 열어 내 직불카드를 꺼내면서 말했다. “네, 그렇죠. 집에 가는 길에 주위에서 좀 쓸 만한 것 좀 사려고 들른 것 뿐 이거든요.” 나는 그대로 카드를 리더기에 긁으며 말했다.

 

그런데 긁는 순간, 소매가 몇 인치 정도 올라갔고, 안쪽에 있던 연청색 털이 그대로 노출되 버렸다. “헉!” ‘또 변한건가?’

 

순간 '헉'하던 소리에 계산원이 나를 쳐다봤다. 어 이런, 이거 안좋은데, 젠장, 젠장, 젠장. "아.. 하하, 저랑 제 친구가 거기..... 위문공연을 가거든요.저기.. 병원에 환자 아이들한테 보여 주려고요." 그럴듯한 말 이였다.

 

잭이 옆애서 물건을 빠르게 쇼핑백에 담으며 거들었다. “맞아요 맞아. 우리가 백혈병 환자 아이들 위문공연을 할 예정이거든요.”

 

계산원은 더 이상의 별다른 반응은 없었다. 또한 우리가 결제하는 동안에도, 그런것을 추궁할 생각을 하지 않았었다. 그리고, 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 계산원이 뒤늦게 다른 질문을 하기 전에 빠르게 잠을 챙기고선 출구로 갔다.

 

“후우, 그것 참 아슬아슬했어.” 잭이 문을 열며 말했다.

 

“맞아, 정말 아슬아슬 했지. 휴 어쨌든, 최소한 쇼핑이라도 끝낼 수 있어서 다행이야. 그리고......” 밖으로 나오니 신선한 바람이 마치 장벽처럼 나에게 불어왔다. 나는 그대로 입으로 열고 느껴지는대로 말했다. “...... 남서쪽 풍속 7노트의 저기압이 북쪽으로 올라오면서 여기서 17마일 떨어진 곳에서 고기압이랑 충돌하고 있네.” 나는 잠깐 멈칫했다. “이런 잭, 이쪽으로 오질나게 큰 폭풍이 몰려오고 있어.”

 

잭도 잠깐 걸음을 멈추고 눈 꼬리를 몰리며 나한테 물었다. “혹시 휴대폰 보고 안거야? 아니면 또 뭔가 내가 못 보는 이상한 걸 본거야?”

 

“휴대폰은 아니야, 난 그냥 어.... 바람을 읽어본거야. 너도 혹시 느껴지냐?” 나도 솔직히 놀랐다. 느껴지는 대로 정확한 정보들이 내 머릿속에 깨끗이 착착 들어오니까.

 

잭이 웃음을 터뜨리며 짐을 들고 차로 갔다. “아니, 절대 그렇지 못할걸? 왜냐면 나는 그런 날씨 페가수스가 되는게 아니니까, 그치?

 

“글쎄다.” 난 곧바로 뒤를 따라서 차에 짐을 싣는걸 도왔다. 하지만 내 생각은 곧 다른 곳으로 빠졌다. 반절정도 페가수스가 된 이후로 날씨를 읽을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는건 어느정도 일리가 있는 사실이긴 했다. 거기서 끝나면 깊게 신경이 쓰일 일은 아니겠지만, 중요한 사실은 난 이미 그렇게 날씨를 읽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옛날부터 그래왔으니 잭도 이제는 그런가 보다 하며 지나갈 정도가 됐으니 말이다.

 

난 잠깐 내 눈을 비비며 멈춰섰다. 잭이 나를 보며 “왜 그래?”라고 말했다.

 

난 잭을 바라 보았다. 그녀는 이상할 정도로의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 덕에 주위의 다른 농부들은 하나같이 파산했었다. 흠.... 오전에 이 사단이 전부 25살이 된 때부터 일어났다고 알아차린 그때부터 계속 생각해봤다. 하지만 여전히 잘 모르겠다. 일단 지금 시점에선 우리가 도출해낸 생각이나 주장들이 전부 사실이라고 장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몰론 육체적인 변화나 이름 부르는게 무의식 적으로 바뀐 점이 있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25살 이후에 일어난거고, 이것처럼 그 이전부터 일어난 것들은? 으아아, 도대체 상황이 어떤 식으로 쳐돌아 가고 있는 거야? 도데체 언제부터 이 모든게 시작된거지?

 

난 일단 잭에게 대답했다. “그냥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날씨 생각이나 좀 하고 있었어. 쨌든 빨리 가자.”

 

다른 생각은 재쳐둔 채로 일단 나는 운전석에 올랐다. 하지만 곧, 나는 내가 정상적으로 운전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꼬리만 있었을때도 충분히 힘들었건만, 이제는 등에 날개까지 나 있으니, 정상적으로 앉는건 이제 사실상 불가능했다. 내가 앉는 유일한 방법은 몸을 옆으로 90도 정도 튼 다음 어깨를 등받이에 걸쳐서 그대로 옆으로 눕는 방법밖에 없었다. 몰론 이 상태로 운전하는건 당연히 불가능했고 말이다. “이런 썅, 잭, 네가 운전해야 할것 같다. 난 페가수스라 이 모양 이 꼴이니, 어쩔수 없겠다.”

 

옆 조수석에 앉은 잭이 날 보면서 긍정했다. “어..... 그래야 할 것 같네. 하지만 이 차는 수동 기어잖아? 기어 조정은 네가 해라.”

 

~~~~~~~

 

약 2시간 가량 지난 뒤, 마침내 우리는 농장에 차를 세웠다. 좀 불운한 점은 올때부터 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잭의 집에는 차고같은건 없었기에 우리는 어쩔수 없이 대략 200파운드(=90Kg)에 달하는 짐들을 빗속을 뚫으며 옮겨야 했다. 마침내 짐을 전부 안으로 들인 그 순간 우리는 하나같이 몸을 널브러뜨렸다. 우리는 완전히 젖었고, 지쳤고, 거기에다 아침식사 이후로 아무것도 먹은 것이 없다보니 무척이나 굶주렸었다.

 

“휴, 어쨌든 전부 끝났구나. 이제 오늘처럼 오래 집을 비우지 않아도 되겠어.” 잭이 젖은 옷을 벗어재끼기 시작하며 말했다.

 

“그래, 정말 다행이지.” 나도 젖어버린 옷가지를 벗으며 대답했다. 난 그대로 입고있던 사각 팬티를 제외한 모든 옷을 벗어 내려놨고, 전에 뚫어놨던 구멍으로 다시 꼬리를 내었다. 내 꼬리가 다시 눈에 보이니 환희가 홍수처럼 몰려왔다. “으와, 이제 훨씬 낫네. 으으, 그리웠다 욘석아!” 나는 그대로 꼬리를 들어 안으며 말했다. 그리고선, 다시는 바짓속에 감추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뒤에서 잭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이번엔 비웃음이 섞이지 않은 것 같았다. 잭도 나와 똑같은 옷차림한 상태였고, 나처럼 꼬리를 밖으로 내었다. 그녀는 꼬리를 한번 탁 튕긴 다음 말했다. “네 말이 맞았어, 나도 너처럼 이게 점점 좋아지려고 한다.”

 

“어우 아무렴, 셀레스티아가 준 것인데 당연하지!” 나는 웃으면서 잭한테 다가가서 그대로 껴안았다. 껴안는 그 느낌은 꽤 좋았고, 그냥 놔주기 싫어질 정도였다. 나는 눈을 떠서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잭의 눈은 확실하게 일반 사람들의 눈보다 커졌고, 그녀의 입과 코는 뚜렷하게 포니의 형상으로 변하고 있었으니, 전체적인 외관은 내가 봤던 어떤 사람들보다 더 귀여운 얼굴로 변해 있었다. 그때 나는 그녀한테 키스하고 싶은 이상한 충동을 느꼈으나,아마 그건 길고 힘든 하루를 끝내고 집에 온 것이 너무 반가워서 느낀 착란일 것이다. “우리가 해냈다고, 잭! 필요한 걸 전부 가졌다고! 이제 여기 머무르면서 원인을 생각하기만 하면 돼!”

 

“그래, 인마. 이제 며칠간 걱정은 없겠으니...... 오, 스카치로 축하하자고? 대시, 그거 좋은 생각인데?

 

나는 포옹을 풀었다. 스카치? 잭의 시선을 따라서 보니, 식탁위에 25년 된 스카치가 한 병 있었고, 그 옆엔 스카치가 3분의 1정도 담긴 유리잔이 하나 있었다.

 

나는 조용히 귀를 내리고 잭한테 말했다. “잭? 나는 저 스카치 안 꺼냈는데.......?”

 

+=

[출처:http://www.fimfiction.net/story/93383/five-score-divided-by-four]

[원작자:Twistedspectrum]

 

드디어 챕터5가 끝났군요.

여담이지만 미국인간들의 서술법은 여러번 번역해도 참 이해가 안될때가 많아요.

갑자기 뭔가를 설명하기도 하고 어설픈걸 자연스럽게, 그것이 번역가의 과제

번역이 필요한 좋은 2차 창작물이나 이미 번역된 자료를 홈페이지에 등록하고 싶으신가요?

잘못된 링크가 있나요? 번역자나 원작자의 링크가,아니면 창작물에 대한 설명이 틀린가요?

자신의 창작 페이지를 소개하고 싶거나 참여에 관심이 있으신가요?

 

kaelove1234@naver.com으로 부담없이 메일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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