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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ve Score, Divided by Four

Chapter.6 Full circle (일주(一周))

번역자 : 청십초

잭도 곧 이 스카치가 우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따라 놓은 것이란 것을 알아차렸다. 마침 난 잭의 눈동자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변화를 봤는데, 그녀의 얼굴은 일그러졌고, 눈동자는 커졌으며, 귀는 이내 축 쳐졌다. 그리고 이 모든 변화는 잭의 감정이 요동치고 있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아마 나나 잭이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가 집에있다.’

 

마침내, 잭이 입을 열었다. “그럴......리가 없어. 분명 나올때 문을 잠궜다고.”

 

나는 잭의 얼굴을 흘낏 보며 스카치가 놓인 식탁으로 다가갔다. “음.... 잭? 여기 잔에 얼음이 아직 있는데?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

 

잭은 내 말을 듣고 있지도 않은 듯 했다. 그녀는 내 옆에서 계속 중얼거리고 있었다. “깨진 창문도 없고, 문도 전부 잠겨 있었어. 그녀석 빼곤 누구도 열쇠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잭은 갑자기 말을 멈추고 그저 벽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잭의 어깨를 잡으면서 물었다. “그녀석? 누구? 말해봐, AJ! 누구냐고!”

 

~~~~~~~

 

- - - 36시간 전 - - -

 

스튜어디스가 얼음이 담긴 잔에 오렌지 주스를 따라주었다. 나는 개인적으론 주스보단 콜라가 더 당겼지만, 아침 비행이였기에 받을 수 있는 음료가 주스밖에 없던 탓도 있었다. 하지만, 난 일어난지 6시간이나 지난 탓에 제공되고 있는 간식도 나한테는 아침요기보단 점심요기에 가까웠다.

 

바로 옆 창가쪽에 앉아있던 여성 한분이 손을 흔들면서 나를 불렀다. “실례합니다만.... 어.... 아담씨?”

 

“에반이에요.” 나는 그녀의 말을 고쳐줬다.

 

“맞아요, 에반. 잘못 불러서 미안해요. 어쨌거나, 혹시 좀 비켜주실 수 있나요? 착륙하기 전에 화장실좀 들러야 할 것 같거든요.”

 

“그러시죠.” 나는 좌석 탁자를 올리고 그녀가 나올 수 있도록 통로로 잠깐 일어섰다.

 

비행기에서 우연히 만난 그 여자는 자기 이름을 ‘제시카’라고 했고, 시카고 시내에 병원에서 간호사로 근무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꽤 귀여웠도, 그녀와 대화하는건 정말 즐거웠다. 다만 내 직업하고 어울리는 여자는 아니였다, 딱 봐도 온실속에 자란 화초같은 사람이였고, 절대로 농장같은데에 발을 들여넣을 법한 사람은 아닌 듯 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녀는 내가 가는 농경컨벤션에 상당히 흥미를 가지고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난 그녀가 그 컨벤션에 흥미를 가진게 의외였다. 그건 고작 농경기구 회사들의 농사도구를 파는 것 뿐인데도 말이다. 분명 제시카는 간호사라고 했다. 딱 봐도 수렵총이나 트랙터 엔진소리하곤 무척이나 거리가 먼 직업이지 않은가?

 

나는 그녀가 좌석 통로로 나와서 가는 모습을 보고선 한숨을 쉬었다. 그녀와 대화하면 할수록 이번 여행이 꽤 외롭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다못해 친구 한명이라도 동행하면 좀 덜하겠지만, 시간나는 친구도 없는데다가, 잭 마저도 데이브랑 지내면서 그 바보같은 만화 보기에 바빴으니 말이다. 허, 그 둘은 같이 지내면서 언제나 뭔가에 문제가 생겨서 곤경에 빠졌었고, 특히나 내가 며칠간 집을 비우는 지금같은 때에 분명 문제가 또 생겨서 쩔쩔매고 있을 것이다. 내가 없을때 집이라도 날려 먹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나는 손목시계를 흘낏 봤다. 오전 10시였고 한 30분 뒤엔 착륙할 것이다. 난 착륙하기 전에 소변이라도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곧장 화장실로 향했고, 머지않은데 있는 남자화장실에 들어가서 그대로 바짓춤을 내리고 일을 치뤘다.

 

소변을 보는동안 잠깐 아래를 내려다보니, 반으로 잘린 초록사과모양의 문신이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난 생일파티가 벌어진 그날 밤 집에서 샤워하다가 이것을 처음 발견했는데, 이 이상한 문신 때문에 시카고에서의 일정을 취소하고 의사한테 가봐야 하나 고민했었다. 상황은 그당 심각해 보이지는 않았으나, 이며 언재 어떻게 생겨났는지 알 도리가 없으니 좀 섬뜩했었다. 분명 그날 아침엔 없었던 문신이였고, 파티에서 과음한적도 없었지만, 집에 와보니 양쪽 다리에 생겨있었다니....

 

나는 바짓춤을 올리면서 중얼거렸다. "으... 머리야 굴러가라. 도데체 이게 뭐지? 혹시 피부병 발진 같은건가? 아니지, 채색돼 있는데다가 피부 자체도 예전처럼 매끈하니 발진은 아닐거야. 그러면 문신인가? 하지만, 난 문신시술같은건 받은적이 없어서 그것도 말이 안되는데......" 나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으로 감쌌다. 정말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진지하게 의사랑 상담을 해봐야겠다. 어쨌든간에, 이건 정상적인 일은 아니니까.

 

변기의 물을 내리고, 세면대 물을틀어 세수를 했다. 일단은 당장의 일정에만 집중하자. 그냥 단순한 문신일거다. 어쨌거나 잘 가리면서 다니기만 해도 집에 갈 때까진 그럭저럭 지낼수 있을 것이다.

 

나는 거울을 보고선 잠깐 멈칫했다. "내 머리가.... 이렇게 밝은 색이였나?" 내 머리는 칠흑같은 검정색이였다. 그러나 지금 보니까, 검정색 치고는 조금 밝은 색으로 바뀐것 같았다. 그리고, 길이도 조금 길어졌.....나? 뭐야, 이거?

 

나는 곧장 머리를 옆으로 돌려서 다시 거울을 보았다. 앞머리는 아직 정상이였다. 하지만 뒷머리는 3인치(약 8cm)정도 길어진 것 같았다. "이건 또 무슨―"

 

"승객 여러분께 안내말씀 드리겠습니다. 아이오와 시티 공항에서 출발한 우리 비행기는 곧 시카고 오헤어 국제공항에 착륙할 예정입니다. 승객 여러분께서는 착륙을 위해 자리로 돌아가서 좌석벨트를 매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다시 거울에 비친 원인불명의 진갈색 머리를 봤다. "딱 5일간이다. 돌아가면 곧장 의사부터 찾아가야겠다.

제시카는 내 옆에 딱 붙어 누워서는 귀에 속삭였다. “좋은 영화에요, 분명 당신도 좋아할 걸요?”

 

우린 그렇게 침대에 같이 누워서 영화를 봤다. 얼마 뒤, 영화를 보는 중 제시카의 손이 내 가슴부터 아래로 쓸어 내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스킨쉽을 원하는 건가?’, ‘아니 다른 거라면 모를까, 애들 보는 만화를 시청하면서 그 생각이 들까?’, ‘내가 생각을 이상하게 하는것 뿐인가?’

 

마침내 쓸어 내려오는 그녀의 손이 내 속옷 쪽에 닿는 게 느껴졌다. ‘이여자, 설마?’

 

나는 고개를 돌려서 제시카에게 물었다. “음.... 제시카? 설마 내가 생각하는 그걸 생각하는건 아니겠죠?”

 

제시카는 손가락으로 내 입을 막으면서 대답했다. “바보 같은 숫말 같으니라고! 더러운 마음 품지 말아요. 난 그저 꼬리를 만지고 싶었던 것 뿐이니까.” 제시카는 그렇게 말하는 동안 속옷 안에 감춰놨던 내 꼬리를 꺼내 만지작거리며 내 다리에 머리를 배며 누웠다.

 

난 눈썹을 올리며 말했다. “제시카, 당신 참 이상해요.”

 

그녀는 웃으면서 말했다. “당신도 그렇잖아요? 시카고에는 많은 남자들이 있는데, 에반 당신만 이런 것을 가지고 있잖아요?” 제시카는 그렇게 말하고선 양 손으로 내 꼬리를 만지고 있었다. 그녀의 손의 감촉이 꼬리를 통해 느껴졌다.

 

난 그냥 한숨을 한번 내쉬고선 계속 영화를 봤다. 정말 이상한 여자 같으니라고. 뭐 그래도, 이 이상한 증상들을 경계심 없이 그저 재미로만 보고 있는 건 참 다행이었다. 내일 아침부터 이 병을 고치는 방법을 찾아야 할 텐데, 내 편이 한명이라도 있다는 건 정말 큰 힘이 되니까.....

 

~~~~~~~

 

창문 사이로 비추는 햇빛에 잠을 깼다. 아무래도 영화를 보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린 것 같다.

 

난 하품하면서 얼굴을 문지르려 팔을 움직이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난 팔을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당황하며 팔 쪽으로 시선을 옮겼는데, 그때 내 눈에 보인 건 철로 된 침대 프레임에 쇠고랑이 단단히 차여있는 양쪽 손 이였다. 공포심에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다리 또한 묶여 있는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도데체 이건 또 뭐야? “제시카?!?!”

 

“어머나, 행복해라! 일어났구나!” 제시카가 침대쪽 벽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의 얼굴에는 이상한 미소가 담겨있었다.

 

난 잔뜩 긴장하며 말했다. “제시카, 이것 좀 풀어줘요.”

 

그녀는 그저 그 자리에서 웃기만 했다. “이런, 아가야. 왜 그래야 해? 넌 나만의 애마잖니! 귀여운 우리 말이라고! 우린 이렇게 같이 재밌게 지낼 거잖니?”

 

극심한 공포가 엄습해왔다. “뭐라고요? 말이라고요? 제시카, 난 그냥 이상한 꼬리나 귀가 달렸을 뿐이라고요! 이거 놔줘요!”

 

그녀는 깔깔 웃으면서 말했다. “오, 아니 아니야. 이젠 그것 뿐 인건 아니란다. 보렴!” 그녀는 내 하체를 가리켰고, 난 그녀가 가리키는 하체로 시선을 돌렸다. 그때 내 시선에 들어온 장면은 정말 충격적이였다.

 

우선 제시카는 내 옷을 전부 벗겨놨었다. 때문에 나는 내 몸이 충격적으로 변한 모습을 매우 적나라하게 볼 수가 있었다. 내 골반은 더 이상 정상으로 생기지 않았고, 하체의 대부분에 붉은 털이 자라나 있었다. 거기다 내 사타구니에 달린 그것은 더 이상 인간의 것으로 보이지 않을만큼 이상하게 변해있었다. 전체적으로 볼 때 내 하체는 더 이상 인간의 것으로 보기 힘들었다. 나는 금방이라도 목구멍 바깥으로 비명이 튀어나올 것 같았지만, 그때 제시카가 박장대소하면서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발도 봤니? 너무 귀여운 네 발굽을 말이야!”

 

그녀의 말은 사실이였다. 시선을 좀더 아래로 내려보니, 그동안 있던 발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붉은 털의 발굽이 대신하고 있었다. ‘세상에, 이것들은 또 뭐야?’ 난 시선을 제시카에게 옮기며 말했다. “당장 이거 풀어줘요! 상황이 더 나빠지고 있잖아요! 바로 해결책을 찾아야 해요!”

 

그녀는 얼굴을 찡그렸다. “하지만 풀어줄 순 없단다! 넌 내 애마가 돼야 하잖니?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말이야!”

 

난 당장 여기를 벗어나야 했다. 그녀의 행동은 더 이상 정상적이지 않았다. 안그래도 이상한 그녀의 눈빛은 내 발굽을 봤을 때부턴 완전히 맛이 가 있었다. “제발요 제시카, 날 좀 풀어줘요. 당신이 원한다면 오늘 밤 여기로 돌아올게요. 그때 날 애마로 삼아도 늦지 않잖아요!” 나는 애걸하듯 그녀에게 말했다. (몰론 내가 내뱉는 말이 어떤 뜻인지 깊게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제시카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노력은 좋았어, 에반...... 아니지, 이젠 에반이라고 부를 이유가 없지? 시도는 좋았어, 우리 망아지. 하지만 널 풀어주면 바로 도망쳐 버릴 것이라는 걸 난 알고 있단다. 지금은 이렇게 묶어놓을 수밖에 없어. 하지만 걱정마렴! 넌 이미 발을 잃었잖니! 조금만 기다리면 손도 발처럼 발굽으로 변하겠지? 그러면 넌 손가락이 없어서 문고리를 열 수도 없을테고 말이야! 그때부턴 문만 잠궈놓으면 영원히 여기서 같이 지낼수 있단다!”

 

제시카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내 몸이 뼛속부터 떨렸다. 그녀는 지금 협박을 하고 있었지만, 얼굴에 미소를 담으며 그런 소리를 하니, 그야말로 조커가 따로 없었다.

 

나는 필사적으로 나가기 위해 머리를 굴리며 말했다. “오, 그래요 제시카. 그것 참 기가막힌 계획이네요, 정말로요! 하지만 제시카, 지금 당장은 소변이 마려운데, 화장실좀 쓰게 잠깐이라도 풀어주면 안될까요?”

 

제시카는 계속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 “미안해 아가야, 그럴 순 없단다! 하지만 괜찮아, 넌 말이잖아 그렇지? 말은 사람이 쓰는 화장실을 쓰는 게 아니에요!”

 

난 그녀를 잠깐 동안 쳐다보았다. 그녀는 정말로, 완전히, 완벽하게 미친 여자였다. 난 그동안 차분하게 행동하려 했지만, 이젠 그럴 생각마저 바닥난 것 같았다. 어떻게든 이 여자한테서 떨어져야 했으니까. 난 다시 아래를 바라봤다. 붉은 털로 뒤덮인 다리의 근육은 상상 이상으로 거대했고, 난 깊게 생각하지 않고 그동안 올라온 아드레날린을 그대로 다리에 집중시켰다. 그리곤 바로 다리가 묶여있는 침대 프레임을 향해 그대로 폭발시켰다.

 

[쾅!!!]

 

제시카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뒤로 나자빠졌고, 침대는 그대로 부서져 버렸다. 프레임은 철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내지른 한방에 곳곳이 부러지고 휘어져 버렸다.

 

제시카는 실성한 듯 손을 내지르며 외쳤다. “아아아! 나쁜 망아지 같으니라고! 진정해! 진정 하란 말이야!” 몰론 난 그녀의 말 따윈 무시했다.

 

세상에 침대가 완전히 두 동강이 나다니.... 아까전만 해도 왜 이 방법을 쓰지 않았는지 궁금해 질 정도였다. ‘허, 분노에 찬 발굽의 힘인가?’ 여튼 난 그 한방으로 인해 묶여있는 다리는 완전히 자유가 됐다. ‘자, 그러면 이제 팔은 어떻게 한다....’ 보아하니 작은 사슬이 달린 고랑일 뿐이니까, 아무래도 시도해 볼 만한 가치는 있는 것 같았다. 난 이를 악 물고 그대로 팔을 힘껏 아래로 당겼다.

 

제시카가 여전히 손을 내지르며 계속 말했다. “그만해! 그만하라고! 그런 짓은 자해가 될 뿐이야. 절대로 그걸 끊을 수 없―” 그때, ‘틱, 틱’ 거리는 쇳소리가 들려왔고, 곧이어 쇠고랑이 고정된 철제 침대 프레임이 ‘텅’소리와 함께 끊어져 버렸다.

 

난 구속에서 벗어난 몸을 일으켜 세우며 제시카를 바라봤다. 그녀는 여전히 ‘나쁜 망아지야!’, ‘침대로 돌아가’라며 나에게 외쳐대고 있었다.

 

난 그대로 그 미친 여자에게 다가가 그동안 느낀 분노 그대로 돌려주려 했다. 하지만, 분노를 느끼기 시작한때부터 내 뇌가 계속 나에게 말을 해왔다. [행동 중지를 권고함, 현재 행동은 도덕 회로의 사회 통념 ‘여자는 때리지 않는다.’에 위배됨. 존엄성의 훼손이 우려, 속히 행동 중지를 요함]

 

하아아..... 제기랄 그래, 이번엔 니가 이겼다, 이 망할 뇌야. 난 치켜올린 주먹을 내렸다. 대신 그녀를 그대로 잡아 들었다. 그녀의 주먹은 부질없이 내 등을 치고 있었고, 등 뒤에서 ‘나쁜 망아지야.’라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다. 흠...... 이 여자를 어디다 던져놓지?

 

나는 방을 나와서 거실로 향했다. 걷는 동안 단단한 나무 바닥에서 다각 다각 하는 발굽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무척 이상하긴 했지만, 놀랍게도 그 소리가 역겹지 않았다. 내 말은, 발이 바뀌어 버린 것은 충분히 이상했지만, 그것이 침대에서 탈출하는게 큰 역할을 했으니까, 이전처럼 거부감이 드는게 덜했다는 것이다.

 

뭐, 그런 생각은 나중에 하자. 일단 이 싸이코 가시나를 처리하는게 급선무니까. 난 주위를 걸어다니다 거실 주변이 있는 화장실에서 걸음을 멈췄다. 난 그대로 들쳐 업은 그 여자를 화장실 안에다 밀어넣고선, 문을 닫았다. 그 화장실의 문은 바깥쪽으로 열리는 문이였으니, 난 문이 열리지 않게, 소파를 끌고 와서 화장실 문 앞에 둬서 가눠놨다. 그녀는 나가려고 하릴없이 문을 쾅쾅 두드렸지만, 그 노력은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나는 머리를 쓸어 넘기면서 숨을 돌렸다. 자, 그러면 난 이제 어떻게 행동해야 하지? 어디보자, 일당 이 아파트에 머무를 순 없고, 더욱이 시카고에도 머무르면 안 될 노릇 이였다. 더군다나 말 귀, 말 꼬리, 발굽에다, 몸에 반절에 붉은 털을 두르고서 지낸다는게 얼마나 위험한지 충분히 몸으로 느꼈다. 지금당장 난 안전하게 머무르면서 생각을 할 만한 곳이 필요했다. 집이다. 난 당장 집으로 가야한다. 아마 거기는 안전할 거다. 잭 또한 날 도와주면서, 상황이 호전될 때 까지 나를 숨겨줄 수 있을 것이다. 걔는 좋은 가족이니까, 분명 날 도울 거다.

 

난 주위를 힐끗 둘러봤다. 특별한 건 없었고, 오직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미친 여자의 발악만이 들려올 뿐 이였다. 뭐 됐다. 이젠 이 지옥 같은 곳에서 벗어날 차례니까. 나는 침실로 돌아가서 그녀가 벗겨놓은 옷을 도로 입고선, 내 휴대폰을 집었다. ‘신발은 어디있더라?..... 맞다 현관에 있겠다.’ 나는 곧장 현관에 있는 신발을 흘낏 보고선 내 발굽이랑 번갈아 봤다. 굳이 신발이 필요하려나? 발굽이란게 야외활동에 적합하게 발달된 것이지 않나? 허, 그럼 신발 따위 필요 없겠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선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챙겼다. 그것은 신발장 위에 놓여 있는 제시카의 차 열쇠였다.

 

~~~~~~~

 

나는 당장이라도 이 도시를 뜨고 싶었지만, 대책 없이 막 떠날 순 없었다. 도시에 널려진 나에 대한 서류들을 그냥 두었다간 또 제시카가 뒤를 밟고 쫓아올 수 있었으니까. 난 일단 호텔로 가서 잡아놓은 객실부터 체크아웃 하기로 결정했다. 5일치 숙박료를 지불해놓고선 하루 만에 체크아웃 한다는 게 멍청해 보일수도 있었겠지만, 만약 그렇게 하지 않고 그대로 도시를 빠져나와버리면, 호텔 측에서 경찰한테 실종신고 할 테고, 그러면 오히려 더욱 주목을 끌게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 것이다.

 

난 그대로 호텔 접수 데스크로 가서 체크아웃 수속을 밟았다. 몰론 데스크 안내원은 이렇게 일찍 체크아웃 하는데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거기다 내 머리 위에 솟아난 귀랑 발굽을 보면서 무슨 일이냐고 의심스럽게 물었다. 난 아무것도 아닌 듯 행동하면서 대충 얼버무렸고, 난 어디까지나 숙박비를 지불한 합법적인 고객이였기에, 그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앉고 순순히 체크아웃을 시켜줬다. 그러고 나서, 난 빠르게 호텔을 떠났다.

 

한곳 더 들러야 할 장소가 있었다. 바로 그 응급센터였다. 난 솔직히 그 곳엔 다시는 가고 싶지는 않았지만, 난 어제 거기를 들러서 내 정보가 담긴 서류를 작성해 줬고, 그 곳에서 일하는 제시카는 또 그 서류를 보고선 내 뒤를 쫓아 올 가능성도 충분해서 어쩔 수 없었다. 난 그 일말의 가능성까지 없애야 했다.

 

난 차를 한 블록 떨어진 곳에서 주차시킨 뒤에 그 응급센터로 향했다. 센터 문을 열 때, 문에 달려있는 종이 흔들려 종소리가 났고, 접수처의 간호가사 그 소리를 듣고 나를 바라봤다. “안녕하세요, 에반? 다시 만나서 반가워요!” 뭐, 이놈의 귀 때문에, 사람들이 나를 똑똑히 기억하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였다. 그녀는 내 발을 보고선 나에게 말했다. “오오, 좋은 신발이네요, 에반씨. 꽤 고전적이네요.”

 

나도 아래를 보며 생각했다. ‘이건 신발이 아니라 발굽인데, 왜 사람들이 이걸 보면서 다 신발이라고 착각할까....’ 난 잠깐 그렇게 생각했지만, 사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까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어졌다. 난 바로 고개를 올려 간호사의 말에 대답했다. “고마워요, 그나저나 제 이름을 기억하고 계시네요? 분명 어젯밤에 만났죠?” 그 간호사는 수긍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여기 온걸 기억할 거에요, 그때 서류를 작성할 때 거기다 전화번호를 제대로 기입한 건지 기억이 잘 안 나네요. 혹시 틀린 부분이 있는지 확인 할 수 있게 그때 그 서류좀 줘 보실 수 있나요?” 난 그렇게 말하고선 어색한 미소를 지었고, 그 간호사는 잘 알아들은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요. 그때 완전히 정신줄을 놨었죠, 그죠? 잘못 적을 여지도 충분하겠네요. 잠깐만요, 당신 서류를 좀 찾아볼께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뒤에 있는 캐비닛을 열어 서류을 찾기 시작했다.

 

잠시 뒤, 간호사는 캐비닛에서 ‘스미스, 에반’이라고 커다랗게 적힌 폴더를 꺼내왔다. 난 그녀에게서 파일을 건네받으려 했지만, 그때 그녀가 조금 얼굴을 찡그리며 나한테 말했다. “음..... 혹시 파일 전체를 보고 싶으신가요? 아니면 단순히 앞장에 기본 인적서류만 보시려는 건가요? 아직 복사를 안 해놔서, 그게 우리가 가진 유일한 서류거든요. 평소대로라면 파일 전체를 환자한테 드리지는 않습니다만.....”

 

난 미소를 한번 더 지어보였다. “전체 서류좀 볼 수 있을까요? 네? 정신이 없었던 탓에 오류가 서류 곳곳에 있을 것 같아서요.”

 

나는 그녀의 시선을 봤다. 그 간호사는 나를 정말 안쓰럽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뭐, 하긴 화장실에서 기절해 자빠지고, 빨간 말 귀가 붙어있는 남정네를 보면 뭐...... 어느정도 동정심이 생길 수도 있긴 하겠다. 여튼 그 여자는 그렇게 나를 보고선 입을 열었다. “에반씨. 아까 말씀드렸듯 이건 저희 쪽에서 가진 하나 뿐인 서류들입니다. 사정이 그렇다보니 허락은 해드리겠습니다만, 만일을 대비해서, 여기 이쪽에 작은 방 안에서만 보셔야 합니다. 어디까지나 만일을 대비해서 말이죠.”

 

그녀는 접수처 뒷쪽에 있는 작은 방의 문을 열어선, 거기 있는 책상 위에 폴더를 놓아 두었다. 나는 감사를 표하며 그 방 안의 책상에 앉아서 파일을 열어봤다. 흠..... 난 그냥 주소나 전화번호만 바꾸고 돌아가려 했지만, 이렇게 전체 서류를 볼 수 있게 됐으니, 여기 적힌 정보들을 샅샅이 뒤져보고 갈 수도 있겠다. 그렇지 않은가?

 

난 혈액검사 페이지를 펴서 조금 훑어보았다. 온갖 의학 용어가 난무해서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각각의 페이지에는 ‘정상’이라고 적힌 도장이 찍혀 있었다. 흠... 이런 거라면 별다른 문제는 없다는 것이겠지? 뭐, 바이러스나 다른 이상한 병이 없다는 거겠고..... 그러면 의사 소견은 어떻지? [환자에게서 망상장애가 의심됨. 과거 의학 치료나 처방에 대해서 계속 거짓말로 일관하고, 자신이 받은 특이한 성형수술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듯 행동함. 환자는 뭔가를 발견하면 자신에게 전화를 해서 도와 주기를 요청함. 본 의사는 이 환자에게 정신적 치료를 할 생각이며, 그에게 전화하는 대신 정신건강 전문가를 초청할 예정. 다행히도, 일정을 잡는데 문제는 없어 보임.]

 

난 폴더를 닫았다. 뭐.... 이 의사가 이렇게 판단한 것은 이해 할 수 있다. 나도 아마 똑같이 행동했을지도 모르니까. 여튼 이제는 이 폴더를 가지고 나갈 차례였다. 원래 의도처럼 단순히 인적사항 몇 개만 바꾸고 갈 수도 있었겠지만, 만약 그대로 둔다면 내 신원이 다른 병원으로 퍼져 나갈 가능성도 있었으니 아무래도 지금 상황에선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더 좋을 것 같았다. 나는 곧장 일어서서 그 폴더를 슬그머니 내 바지 안쪽에 쑤셔 넣었다. ‘허, 그사이 빨간 털이 더 자라 올라와 버렸잖아?’ 빠르게 집으로 돌아가야했다.

 

난 문을 살짝 열어 그 틈으로 밖을 봤다. 그 간호사가 바로 옆에 서있었고, 곧 열린 틈을 보고선 방 안쪽으로 물었다. “에반씨? 다 끝났나요? 기다리고 있잖아요....”

 

난 재빨리 문을 닫았다. “조금만 더 기다려줘요. 거의 다 끝났으니까.” 생각해라, 생각해라, 생각해라. 난 빠르게 주위를 둘러봤다. 방은 창문도, 심지어 환풍구도 없는 오직 벽과 문으로만 이루어진 완벽한 폐쇄형 이였다. 도대체 어디 나갈 길이.......

 

그때 내 눈에 보인 건 빨간 철제 사각형의 하얀 손잡이가 달린 어떤 것 이였다. ‘화재경보기’ 나는 잠깐 입술을 물었다. 진짜 이 방법밖에 없는건가? 몰론 이런 짓은 중범죄였다. 하지만 난 이미 차도 훔치고, 사람도 감금시킨 몸 이였고, 게다가 범죄이건 아니건 나에게 주어진 선택권도 거의 없는 상황 이였다, ‘또 이건 뭐야?’ 난 화재경보기에 적힌 글귀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어떤 사람이든 거짓 경보를 울려 혼란을 야기한 경우, 5000달러의 벌금에 처합니다.]

 

난 빙긋 웃으며 손잡이에 손을 올렸다. “어떤 ‘사람’이든 이라고? 이런, 그것 참 편리하겠네. 미안하지만, 제시카 말에 따르면 난 이런 법이랑 상관없는 몸이라고. 왜냐면, 난 사람이 아니라 말이니까.”

 

--달칵--

 

경보가 시끄럽게 울리기 시작했고, 바깥 광경은 머지않아 혼란스러워 지기 시작했다. “어머나! 불이야! 불이야! 의사 선생님, 빨리 환자들 대피시켜야 해요!! 불이 났다고요!”

 

난 속으로 웃었다. 생각보다 너무 쉬웠으니까. 난 문을 열고 바깥 상황을 봤다. 나가는 길은 확실히 무방비 상태였다. “쇼 타임.” 나는 곧장 로비를 가로질러 나갔다. 사력을 다해 전속력으로 달려갔고, 곧이어 출구로 나왔다. 난 빠르게 세워놨던 차에 달려가서 탔고, 파일을 꺼내 옆자리에 던져 놨다. 난 잠시 꼬리가 끼이지 않도록 앉는 자세를 바꾼 뒤에 곧바로 차에 시동을 걸고 고속도로로 운전해갔다.  ‘긴 운전이 되겠구나. 다행히도 저녁쯤에는 도착 할 수 있겠네.’

 

~~~~~~~

 

착륙하고, 택시타고, 호텔 체크인까지 일사천리로 하고 난 그대로 호텔방 침대에 앉았다. 난 그냥 다른데 가지 않고 호텔방에 머무르고 싶었다. 그래서 그래서 곧장 점심식사를 룸 서비스로 주문하고선, TV를 켜서 시청하기 시작했다.

 

몇몇 TV프로그램을 보고나니, 언제부터인가 계속 내 앞머리가 시야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무심코 손으로 앞머리를 치웠는데, 문득 내 앞머리는 이렇게 생기지 않았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스쳐갔다.

 

나는 바로 TV를 끄고 거울로 달려가서 머리를 다시 살펴봤다. 내 머리는 여지없이 바뀌어 있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나는 벽에걸린 시계를 봤다. 시곗바늘은 오후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불과 5시간 전만해도 비행기 안에서 머리가 진갈색으로 변한건가 싶어서 속상했는데, 지금은 상황이 더 나쁘게 변해있었다. 내 머리는 이젠 진갈색을 넘어 옅은 갈색빛이 띄는 금발로 바뀌었고, 길이도 어께에 닿을 정도로 자라나 있었다.

 

머리카락은 이렇게 빠른 속도로 자라지 않는다. 몰론 머리색도 바뀌지 않는다. 그 말은? 뭔가가 잘못돼 있다는 것 이였다. 순식간에 불안감이 엄습해왔고, 불가능한 일 사이에 홀로 남겨진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나는 바로 주머니에서 휴대폰로 꺼냈다. 그러고선, 바로 다이얼 단축키 1번을 눌러 전화를 걸었다. 혹시 잭이랑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뭔가 해답이 나오지 않을까? 일단 나는 잭한테 이 일을 이야기하고―

 

"어, 에반." 휴대폰 너머로 데이브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내가 엉뚱한 사람한테 전화를 걸었나? 나는 잠깐 휴대폰을 확인했다. 분명 전화는 잭에게 걸었다. 그것 참 이상하네, 왜 데이브가 잭의 전화를 받았지? 잭이 데이브네 아파트로 갔나? 분명 오늘 농장에 돌아가서 지내겠다고 했는데?

 

나는 입을 열어 물었다. "어, 안녕? 친구, 잭 어딨어?"

 

“다른 방에 있어, 그녀는 곧 이쪽으로 올 거야.” 데이브가 대답했다.

 

....음? 방금 데이브가 '그녀는 곧 이쪽으로 올 거야.'라고 했나? '그녀'라고? 분명 자기네들끼리 뭔가 이상한 역할놀이 같은 거 하고 있나? 허, 그놈 참.... 나는 여기 시카고에서 거지같은 상황에 처해지는 동안 자기들끼리 잘만 지내고 있다니.....

 

나는 나지막히 한숨을 내쉬고 말했다. “아, 알겠어. 뭐, 그렇게 까지 할 필요는 없고, 그냥 그녀한테 별일 없이 호텔에 도착했고 계획된 대로 5일안에 집에 돌아갈 거라고 전해줘.”

 

“알았어, 거기서 잘 지내다 와라.” 데이브가 그렇게 말하고선 전화를 끊었다.

 

난 내가 옳은 행동을 한 건지 확신을 못한채로 침대에 휴대폰을 던져놓았다. 난 정말 잭이랑 이야기 하고 싶었지만, 나중에 때를 봐가면서 이야기 하는 게 더 좋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잭에게 머리가 이상하게 변해간다고 이야기 하는것은 그것대로 이상한 짓이니까.

 

난 이마를 문지르며 시계를 봤다. 아직 오후 4시였다. 오늘 컨벤션은 열릴테고, 우선 컨벤션으로 가서 물품들을 둘러봐야 했다. 머리카락 일 때문에 그 일정을 망칠 수는 없었으니까.

 

~~~~~~~

 

컨벤션은 콩나물 시루처럼 완전히 꽉 차 있었다. 단언하는데, 분명 매년 규모가 커져 왔음이 틀림없었다. 난 일단 방금 푸드코트에서 식사를 하고 나왔으니 이제 전시회 쪽으로 가서 물건들을 둘러 봐야겠다.

 

나는 바로 앞에 발굽연고를 파는 판매원한테 다가갔다. 표지판에는 '발굽 곰팡이 제거에 탁월한 효과'라고 적혀있었다. 흠.... 분명 농장에도 이 곰팡이 때문에 문제가 생긴 가축이 있었다. 하지만 표지판에 예시로 보여주는 사진은 소 같은 우제류밖에 없었고, 말 같은 기제류에게도 효력이 있을지는 아직 의문이였다. 그래서 나는 바로 판매원한테 말을 걸었다. “저기 실례합니다만, 이 크림―”

 

“당연히 말한테도 효과가 있죠!” 판매원이 웃으면서 말했다.

 

뭐지? 독심술이라도 부린건가? 아니지, 아무래도 이런 걸 물어보는 사람이 하도 많아서 그냥 튀어나왔나보다. 어쨌든 나는 그 판매원이 가르쳐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면서 손에 들고 있는 브로셔를 읽었다. 그러고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한 10피트정도 걸어갔을 즈음 뒤에서 판매원이 외쳤다. “아, 그리고 당신같은 말 사육사를 위한 용품도 많아요! 여기 이 마구(馬具)는 어때요?”

 

나는 잠깐 멈칫했다. 다시 돌아서 그 판매원한테 물었다. “저기요, 제가 말 기르는건 어떻게 아신거에요?”

 

그 판매원은 그저 웃기만 하면서 팜플렛과 마구의 사진을 건넸다. 나는 그것들을 받아들고, 가던 길을 계속 갔다. 손목시계를 보니 아직 7시 55분이였고, 폐관시간은 9시니까 아직 둘러볼 시간은 더 있었다.

 

“야이 덕후놈아! 여긴 코믹콘 같은데가 아니야!” 지나가는 길에 어떤 놈이 친구들이랑 웃으면서 나를 가리켰다. 나는 몸을 돌려 걔네들을 봤다. 방금 저놈들이 나를 덕후라고 불렀나? 도데체 어딜봐서...... 아, 혹시 이 머리카락이 좀 덕후스럽게 보였나? 으.... 아무래도 모자같은걸 구해야겠다.

 

그놈들한테 신경끄고, 난 곧장 다른 판매대로 가서 물건들을 천천히 보기 시작했다.

 

“가축 브로셔를 가지고 계시군요. 분명 여기 있는 말 사육물품이 필요하신 것이죠?” 난 그 말을 듣고 들고 있던 브로셔와 미소 짓고 있는 판매원을 번갈아가며 봤다. 도데체 어떻게 내가 필요한 물건들을 할수 있지? 난 소름돋는 기분을 애써 감추고 그 판매원한테 물었다. “저기, 음, 제가 말 사육사인 것은 어떻게 아신 것이죠?”

 

그 남자는 계속 미소지으면서 이야기했다. “몰론 당신의 기막힌 아이디어 덕분이죠! 우리는 항상 다른 사람들이 무엇이 필요한지 알아내는데 애를 먹었는데, 당신의 그 코디 덕분에 당신이 필요한 것은 한눈에 알 수 있더군요! 정말 좋은 발상이에요!”

 

뭣? 난 그냥 청바지에 파란 티셔츠만 입고 있는데? “잠깐만요, 무슨 소리죠? 코디라고요?”

 

그는 그저 웃기만 하면서 내 이마 쪽을 가리켰다. “제가 본 것들 중에 제일 잘 만든 것이더군요.”

 

나는 미심쩍은듯 그 판매대를 떠났다. 그리고선 머리위로 손을 뻗어 보았다. ‘도대체 뭘 보고 그런 식으로 반응하―’

 

곧 내손이 내 귀에 닿았고, 그 순간 형언하기 힘든 이질감을 느끼며 온몸이 굳어버렸다. 내 몸에서 느껴지는 그곳은, 그래 ,귀였다. 하지만 그 귀는 원래보다 훨씬 위에 위치했고, 간촉 또한 원래의 감촉보다 훨씬 보송보송했다. 나는 당혹감에 손에 들고있던 브로셔와 다른 팜플렛들을 놓쳐버렸고, 혼비백산하며 그대로 화장실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거울을 봐야 했으니까.

 

화장실에 들어보니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나는 조금 놀랐지만 솔직히 그것따윈 내 안중에 들어오지 않았다. 뭐가 어쨌든간에, 난 급하게 거울이 필요했으니까. 난 곧장 세면대로 다가가서 손을 짚었고, 그리고 고개를 올려보니, 맙소사! 나는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내 머리위에는 말의 귀가 붙어있었으니까.

 

나는 그 귀를 다시 잡아보았다. 느껴지는 촉감은 진짜였다. 진짜 귀를 만지는 느낌과 똑같았다. 거기다가 한 가지 이상한 점이 더 있었는데, 그것은 그 귀가 빨간색 털로 뒤덮여 있다는 사실이였다. 그것은 일반 말의 털색이 아니였던 데다가, 내 피부색하고 대조되어서 한눈에 확 띄게 부각되기까지 했다.

 

“와, 저거 진짜 디테일하게 잘 만들었다.” 옆에서 손을 씻던 어떤 남자가 말했다. “제가 본 귀 장식중 최고인데요? 혹시 어떤 동물용품을 사는지 표시한 건가요? 현명하시군요!”

 

“어.... 그렇죠, 고마워요.” 나는 대충 둘러대고선 다시 거울을 보았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거지? 불과 몇시간 전만 해도 이런건 없었는데? 혹시 이것도 그 이상한 문신과 머리카락이랑 같은 증상인건가? 뭔가 연관점이 있는 건가? 아니지, 그러기에는 너무 허무맹랑했다. 그러나, 허무맹랑한 것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이상한 점이 많았다.

 

“세상에! 그거 움직일 수도 있어요? 정말 진짜같이 잘 만들었네요! 와, 어떻게 만든 것이죠?” 내 옆에 있던 그 남자는 이제 놀라움과 흥분이 섞인 얼굴로 내 귀에 시선을 집중했다.

 

난 또다시 거울을 보았다. 이런 세상에, 그의 말이 맞았다. 그것은 어느새 쫑긋거리며 움직였으니까. 난 한손을 뻗어 귀 한 짝을 덮었다. 그러니 덮은 쪽의 귀에서 들리는 소리가 사라졌다. 그제서야 나는 부정하고픈 이 모든 상황은 파악했다. ‘이것은 단순한 장식용 귀가 아니다. 이것은 진짜 귀다. 나는 이게 어떻게 됬는지는 모르지만, 현재 내 인간 귀는 붉은 털의 말 귀로 완전히 바뀌어버린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엄습해오는 혼란감에 나는 계속 들려오는 그의 질문을 뒤로하고 무작정 화장실을 나왔다. 그리고 곧장 출구로 가면서 휴대폰을 꺼냈다. 뭔가가 매우,매우 잘못돼가고 있다.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이런 변화따윈 일어나지도 않을 테니까.

 

나는 빠르게 건물을 나왔고, 휴대폰에서 번호를 눌러 전화를 걸었다.

 

“911 긴급센터입니다. 무엇이 문제인가요?”

 

“지금 당장 구급차가 필요해요.”

 

911 전화원은 차분하게 물었다. “구급차가 필요하시다고요? 알겠습니다. 귀하의 이름은 무엇이고, 어떤 응급상황인가요?”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말했다. “제 이름은 에반 스미스에요. 그리고 음, 제가 의사를 급하게 만나봐야 할 것 같아서요.

 

“혹시 크게 다치신 것인가요? 그곳의 위치가 어딘가요?”

 

“여긴 시내에 있는 컨벤션 센터에요.” 내가 대답했다.

 

잠시 뒤 휴대폰 너머에서 전화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알겠습니다, 에반씨. 혹시 귀하께서 계신 컨벤션 센터에서 무슨 응급상황이 벌어진 것 입니까? 구급차가 왜 필요하십니까?”

 

나는 목덜미를 긁으며 잠시 생각했다. 난 지금 당장 이 이상한 증상 때문에 의사를 만나야 했지만, 지금 전화원에게 말의 귀나 길어진 머리카락의 이야기를 하면 그녀가 장난전화로 치부해 버릴 것이 틀림없었다. “어.... 그냥 의사랑 지금 이야기를 해야 하거든요. 그러니까.... 내 머리에 뭔가 이상한 혹 같은게 났어요.” 나는 최대한 진실에 근접한 거짓말을 했다.

 

“그냥 혹을 점검하는 것 밖에 없습니까? 다른 긴급상황은 없는 것인가요? 음...... 일단 귀하께서 원하신다면 구급차를 보내드릴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북쪽으로 3블록 정도만 가신다면 작은 응급센터가 한곳 있으니까, 긴급한 상황이 아니시라면, 직접 그쪽으로 이동하시는 것이 구급차 비용보다 더 저렴할 것입니다.”

 

응급센터라고? 흠, 어쩌면 큰 병원보단 작은 응급센터에서 진료 받는 게 더 괜찮을 지도 모르겠다. 사람이 많은 곳에선 더 곤란해질 지도 모르니까. “아, 그게 더 낫겠군요. 북쪽으로 3블록이라고요? 정확한 주소가 무엇이죠?”

 

전화원은 나에게 주소를 불러주었다. 그리고선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정말 구급차가 필요하신다면, 이쪽으로 전화를 다시 해주세요. 그러면 지체 없이 구급차를 보내드리겠습니다.” 나는 감사를 표하고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가르쳐준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

 

몇분 뒤 나는 응급센터에 도착했다. 보아하니 의사 하나에 간호사 한두명으로 이루어진 작은 사설의원인 것 같았다. 나는 접수처에 다가가서 말했다. “안녕하세요. 의사를 좀 만나 뵈러 왔는데요.”

 

접수처의 간호사는 내 귀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럴 만도 하겠지. 이해한다. “알겠습니다. 몇 분정도 대기하셔야 할 것 같은데, 이 서류를 작성하시고 자리에서 기다려 주세요.”

 

나는 서류를 작성한 뒤에 대기실의 의자에 가서 앉았다. “앗!” 갑자기 느껴지는 통증에 나는 비명을 지르며 일어났다.

 

“뭔가 문제 있으신가요?” 간호사가가 접수처에서 나를 보면서 말했다.

 

“아니요, 괜찮아요, 그냥 의자에 뭔가가 있었나 봐요.” 나는 그렇게 말하고선 의자에 있는 물건을 치우려고 몸을 돌려서 내려가 봤다. 하지만 내 시선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는 텅 빈 의자뿐 이였다.

 

나는 다시 몸을 돌리고선, 팔로 의자를 받치며 천천히 앉기 시작했다. 그러나 완전히 앉는 순간 또다시 통증이 느껴졌다. 나는 곧장 다시 일어서서, 아픈 내 엉덩이를 문질렀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때 엉덩이 쪽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혹 비스무리한 것을 발견했다. ‘이건 또 도대체 뭐야?’ 당장 확인해 봐야 했었다. 그래서 난 접수처 근처에 있는 화장실에 최대한 빨리 들어갔다.

 

화장실에 들어가선 바로 바지와 속옷을 내렸다. 그러니 그 부분이 펼쳐지더니 그것이 개방된것에 대한 개운함이 느껴졌다. 잠깐, 펼쳐졌다고? 이건 또 무슨 일이야?

 

나는 고개를 뒤쪽으로 돌리면서 손을 뻗어 그 기이한 돌출부를 잡았다. 나의 뇌는 손에 느껴지는 감촉을 바탕으로 이 미스터리한 것의 정체를 정의했다. [분석결과: 꼬리]

 

[저기 뇌야? 미안한데 이게 뭐라고?]

 

[손의 감촉을 분석, 결과를 도출. 결론: 꼬리. 특히 말의 꼬리와 특성이 흡사함.]

 

[그럴 리가...]

 

[시선에서 보고되는 광학정보를 분석 ... 손에서 보고된 감촉과 눈에서 보고된 형태를 참조하여 분석한 결과 .... 꼬리가 확실. 색상: 연갈색의 금빛, 실제 정보와 다를 확률: 매우 적음]

 

[뇌야.... 도대체 뭘 말하고 있는 거야?]

 

[...... 에러발생! 상식 회로 처리 결과 부적격 판정! 치명적인 오류 발생! 시스템 강제종료!]

 

나는 그대로 화장실 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어버렸다. ‘제기랄 이런 뇌새끼가....’

“간호사, 이분이 여기오신지 얼마나 됐죠?”

 

“대략 30분 정도 됐급니다, 선생님. 제가 열쇠를 가져오죠.”

 

내가 의식을 회복하고 처음 본 장면은 하얀 가운을 입은 어떤 남자의 모습이였다. 그는 내 의식이 돌아온 것을 보고 말을 걸었다.

 

 “환자분? 환자분, 정신이 드십니까? 무슨 일이 있었던 겁니까?”

 

난 머리를 흔들고, 마지막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맞다, 병원에 도착했고, 화장실에 들어가서, 꼬리를 발견했었지. 난 즉시 일어나서 손으로 내 뒤쪽을 짚어봤다. 젠장, 꼬리가 여전히 붙어있었다. ‘도대체 왜 아직도 붙어 있는 거야?’ 난 의사에게 고개를 돌려 중얼거렸다. “꼬리, 저한테 꼬리가 붙어 있었어요.....”

 

의사는 일어나서 간호사에게 말했다. “이분 가운으로 갈아입혀 드리고, 1번 검사실에 데려다줘요. 다른 간호사는 못봤나요?”

 

“아, 제시카요? 휴식중 이에요.” 첫 번째 간호사가 대답했다.

 

“호출해요. 호출해서 1번 검사실에서 혈액검사를 실시해 달라 하세요.”

 

내 손에 가운이 쥐여진 채로 검사실로 옮겨지는 동안 주위는 이전보다 확연히 분주해졌다. 검사실에 도착하고 나서 난 받은 가운으로 갈아입고선, 의사가 올 때까지 내 모습을 거울에 비춰보고 있었다.

 

받은 가운은 뒤쪽이 트여 있었고, 착용감은 아까까지 입었던 평상복보다는 이상할 만큼 좋았다. 아마도, 꼬리가 구속되어 있지 않아서 그런 것 일 것이다.

 

“맞다 꼬리” 순간 구역질이 났다. 나는 일부러 그 꼬리에서 시선을 피했다. 그것은 전혀 원하지 않았던 기괴함의 결정체였다. 당장이라도 그것을 잘라내 버리고 싶었다.

 

문 바깥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간호사가 혈액검사 해놨나요?”

 

“아니요, 선생님, 아직 착도 안했어요. 한 2분정도 뒤에 도착할거라 하더군요.”

 

의사가 문을 열어 들어오면서 어깨너머로 말했다. “도착하는 대로 준비하고 이리로 오라 그러세요.”

 

나는 의사랑 마주앉으면서 최대한 얼굴의 내색을 숨기려 했다. 그는 책을 넘기면서 나를 보고 물었다. “좋아요..... 어디가 아파서 오신 건가요?”

 

나는 숨을 들이쉬고선 천천히 머리를 쓸어내리면서 입을 열었다. (몰론 그 머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길었다.) “어, 선생님..... 어디서부터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일단 여기 온 이유는 이 귀 때문이에요.”

 

의사는 안경을 쓰면서 말했다. “그렇군요. 저도 당신이 화장실에서 실신해 있을 때 봤습니다. ” 나는 의사의 말에 대답하려 입을 열었지만, 그가 빠르게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 귀 때문에 어디가 아픕니까? 여기 온 이유가 그것 뿐 입니까? 언제부터 그걸 달고 다니신 겁니까?”

 

나는 그의 질문에 대답했고, 그는 펜으로 내 말을 들으며 서류를 작성했다. “뭐, 일단 그건 아닙니다. 이것 때문에 어디가 아프거나 하진 않아요. 하지만 의사선생님, 전 제 평생동안 이런 것을 달아본 적도 없어요. 이건 불과 한 시간 전에는 없었던 것이라고요.”

 

그는 내 얼굴을 보면서 한 발짝 물러났다. “보세요, 이거―”

 

“에반.”

 

그가 말을 이었다. “이봐요 에반씨, 나는 당신이 어디서 그런 걸 달았는지 모르고,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한테 거짓말은 하지 마시죠. 전 당신 같은 사람을 수도 없이 봐왔습니다.”

 

나는 눈썹을 올리며 응수했다. “아 그러신가요? 그러면 이건 왜 이런 건데요?”

 

의사는 잠시 말을 멈추고, 손으로 내 귀를 만져보았다. 귀는 무의식적으로 흔들렸고, 그 귀에서 흔들리는 느낌과 소리가 또렷이 느껴졌다. “이건, 뭔가 큰 수술이라도 있었던 건가요? 확실히 여기에 근육하고 신경이 위치한 것은 분명하군요. 하지만, 어디에도 최근에 수술했던 흔적은 없네요.”

 

“이봐요, 의사양반. 그래서 내가 여기로 온 것입니다. 아까 말했듯, 난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이런 것이 없었어요! 저녁 이전까지만 해도 난 분명히 정상이였죠. 그런데 저녁식사후에 거울을 보니까 이런 게 떡하니 있었다고요.”

 

그 의사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알았어요, 에반. 그러면 혹시 지금 복용하고 있는 정신질환 치료약이라도 있나요? 아니면 지금 알고있는 보호자라도 알고 있어요? 지금 전화해 봐도 될까요?”

 

나는 답답함에 한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으.... 됐어요. 하지만 당신이 어떻게 믿는 간에, 최소한 이것만큼은 좀 제거해 주실 순 있나요?” 나는 몸을 돌려서 꼬리를 선명히 내보이면서 말했다.

 

“이런 세상에 이럴 수가!” 의사가 놀라운 표정을 하며 외쳤다. 하지만 곧 평정을 되찾고선 꼬리 이곳저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어떤 신의 손이 이런 수술을 한 겁니까? 도대체.....”

 

그는 곧장 내 꼬리를 잡고 확 잡아당겼다. “저기, 의사선생님? 이거 느낌이 정말 이상한데요.” 사실 그렇게 잡아당긴다고 아프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뭔가 이전에는 모르던 새롭고 이상한 감각이 느껴졌다.

 

“그래요. 저도 그럴 것 같네요.”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플래시를 꺼내 꼬리에 비추면서 말했다. “이 안에 있는 뼈는 꼭 당신 등뼈에서 튀어나온 것 같군요.”

 

“뭐, 그것 참 환장할 정도로 환상적이네요.” 한숨이 나왔다. “여튼, 잘라낼 수는 있나요?”

 

그는 잠시 뒤로 물러나며 말했다. “잘라낸다고요? 전 진찰의라서 그런 쪽은 잘 몰라요. 잘라내고 싶으시다면 외과 전문의를 찾아가셔야 하겠네요.”

 

나는 또 한번 한숨이 나왔다. 지금 상황에서 확실한건, 누구도 나를 도와줄 수 없다는 것 이였다. 모두들 이걸 보고선 전부 이상한 장난 같은 걸로 치부해버리면서, 진지하게 도우려 하지 않으니.....

 

내 실망스러운 감정 사이로 노크소리가 비집고 들어왔다. “선생님? 혈액검사 해야 할 환자가 있다 하셨죠?”

 

의사가 문 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대답했다. “아 그랬죠, 제시(제시카의 애칭). 들어와요.”

 

나는 문을 열고 들어오는 여자를 보고 놀랐다. 다른 사람들이 제시카라고 했을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진짜로 오늘 오전에 만난 그 제시카일줄은 몰랐으니까. 그녀는 안으로 들어와서 의사한테 다가갔고, 의사 또한 그녀한테 다가가서 귓속말을 했다. “조심해요. 이 환자분께서 약 때를 놓치신 것 같으니까.”

 

나는 그 의사의 귓속말이 똑똑히 귀에 들어오는 것이 조금 놀라웠다. 그의 귓속말은 말 그대로 정말 작게 속삭인 것뿐 이였으니까. 여튼 의사는 그렇게 말하고선 방을 나가버렸고, 나는 차분하게 말문을 열었다. “어... 안녕 제시카, 또 만났네요?”

 

그녀는 곧 반가움으로 가득 찬 눈으로 나를 바라봤다. “어머나! 에반, 당신이군요!” 제시카는 다행스럽게도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녀는 곧 들고 있던 클립보드를 책상에 내려놓고 나한테 달려왔다. “어머나, 무슨 일이 있었던 거 에요? 세상에, 이거 진짜에요?”

 

그녀는 곧 손으로 내 귀를 쓰다듬었고, 나는 그런 그녀를 보고 미소지었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 같은 상황에서 낯익은 얼굴만큼 반가운건 없었고, 그녀 한명의 존재로 인해, 아까까지만 해도 초조하던 감정이 이전보다 훨씬 진정되었다. “그래요, 제시카.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나도 잘 모르겠어요. 오늘 오전에 나 봤죠? 그땐 정말 완벽하게 정상 이였는데, 언제부턴가 이 망할 귀가 생기고, 또 이런 것 까지 나버렸어요!” 나는 몸을 돌려 내 머리카락과 똑같은 색을 가진 그 망할 꼬리를 내보이면 말했다.

 

제시카는 그걸 보고선 짧은 비명을 지르며 놀랐다. “에반! 이게 뭐에요? 어떻게 한 거에요?”

 

나는 양 손을 내지르며 대답했다. “나도 몰라요!”

 

그때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 “제시, 괜찮아요? 밖에서 비명이 들렸거든요.” 다른 간호사가 들어오며 말했다. 그리고선, 나를 강한 경계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난 괜찮아요. 그냥, 조금 놀라서 그랬어요.” 제시카가 대답했다. 그녀는 숨을 고르며 놀란 가슴을 진정시켰고, 곧 의료용 장갑을 끼고선 같이 가져온 채혈도구를 들었다.

 

우리는 곧 근처 책상에 앉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채혈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그 간호사에게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결백한 미소를 지어줬다.

 

하지만 그때 위에 붙어있던 귀가 좌우로 펄럭였고, 그 귀를 본 간호사는 곧 얼굴이 새파랗게 변해버린 채로 그대로 뒷걸음질해서 나가 버렸다.

 

제시카는 알콜솜을 들어 내 팔에 문지르며 말문을 열었다. “있잖아요. 의사는 당신을 완전히 미친놈 취급 하고 있었지 뭐에요?”

“당신이 보기에도 미친 것 같나요?” 내가 대답했다.

 

“뭐, 최소한 아침에 봤을 땐 정상 이였죠. 게다가...... 전 당신의 그 말 같은 것들이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기도 하니까요.” 그녀는 장난스레 혀를 살짝 내밀고선, 주삿바늘을 찔러 넣었다.

 

“네? 하하, 그것 참 재밌네요. 뭐, 어쨌거나 이런 건 어떻게든 떼어내야겠죠. 저 의사 말대로 이런 걸 전문으로 하는 다른 의사 같은걸 찾아야겠어요.”

 

“제시카가 바늘을 뽑으면서 말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요? 귀엽기만 한데요, 뭐.”

 

나는 눈썹을 올리며 물었다. “지금..... 작업거시는 건가요?”

 

그때, 갑자기 문을 열고 들어온 의사에 의해 서로 나누던 대화가 중단됐다. “어, 에반씨?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만, 일단 이런 성형수술을 했다는 의료기록은 어디에도 존재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제 말을 믿어주시는 것인가요?” 난 희망이 서린 목소리로 물었다.

 

그 의사는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뭐, 의심이 가긴 하지만, 다른 방도가 생각이 나기 전까지는 장단에 맞춰 드리죠. 그래서 에반, 오늘 일어난 다른 ‘마법같은’변화가 더 있나요?”

 

뭐? 허.... 이 의사양반이 말하는 것을 목소리 톤을 보니 좀 기분이 상했다. 이건 뭐, 세 살짜리 애한테 어떻게 지구를 구했냐고 어르는 것이랑 다른 게 없었다. 하지만 아직은, 그런 걸 감수하고서라도 내 증상을 말해서 해결책을 찾아야만 했다. “...... 몰론 더 있죠. 일단 제 머리는 아침까지만 해도 검정색 짧은 머리였는데, 지금은 엷은 갈색에 장발이 됐죠. 게다가, 이 이상한 문신도 불과 24시간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거라고요.” 나는 몸을 옆으로 돌려 병원 가운을 살짝 들춰서 그 초록색 마크를 보여줬다.

 

의사랑 제시카는 잠깐 동안 말을 잃고 그 마크를 바라봤다. 몇 초의 전적이 지나고 의사가 입을 열었다. “사과 단면인가요? 하하하, 설마 그 문신도 귀처럼 갑자기 생겨났다고 말하는 것인가요?”

 

“이엽, 그렇죠. 다리 양쪽에, 아무런 말도 없이 말이죠.” 나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의사는 여전히 못 믿겠다는 눈치였지만.

 

그래도 그 의사는 최소한 의사로서의 의무를 지키려 하는 듯 했다. 그는 내가 말하는 멍청하고 비현실적인 이야기를 전부 받아 적어 놓고 물었다. “음... 알겠습니다, 에반씨. 오늘 검진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죠. 일단 또 다른 문제가 없으시다면, 환복하시고 가보셔도 됩니다.”

 

난 한숨을 내쉬고선 물었다. “그래서, 하실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인가요?”

 

그 의사는 문을 열면서 말했다. “이봐요, 나는 제가 할 모든 것을 다 해봤어요. 정보를 뒤져보고, 다른 의사한테 이상한 귀를 달고 온 환자는 없었느냐고 물어보기도 했지요. 하지만 에반씨.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제 생각엔 당신이나 저나 이 의문의 증상들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알 것이라 생각합니다.”

 

난 안도감에 미소를 지었다. 이제부턴, 분명 내 증상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기 시작할 것이다. “고마워요 선생님. 만약 뭔가를 알게되면 저한테 전화 주실수 있나요? 전화번호는 접수서류에 적어놨습니다.”

 

의사가 문을 나서며 말했다. “그러도록 하죠. 그럼 제시카? 혈액을 실험실에 두고, 5번방으로 가주세요. 존슨 씨가 관장준비를 하고 계시니까요.”

 

“네, 선생님.” 제시카는 그 말을 하고선 의사가 자리를 뜨는 것을 봤다. 그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녀는 곧장 나한테로 다가와서 말했다. “그래서.... 기분은 어때요?”

 

“음...... 괜찮은 것 같은데요?” 난 조금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제시카가 왜이러지?

 

그녀는 내 뒤로 걸어가서 한손으로 꼬리를 잡고 다른 손으로 부드럽게 쓸어내렸다. “정말 놀라워요 에반. 진짜잖아요! 진짜 말 꼬리 같아요!”

 

“저는 그게 ‘놀랍다’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차라리 ‘소름끼친다’ 혹은 ‘섬뜩하다’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요.”

 

내 뒤에서 이상한 숨결이 느껴졌다. “어머 세상에, 냄새까지 진짜 같네요! 어떻게 한 거죠?”

 

나는 잠깐 떨어져서 말했다. “진정해요 제시카. 왜 그렇게.... 잠깐, 냄새까지 진짜 같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럴 리가 없어요! 말 돌본지 48시간이나 지났고, 거기다 아침에 샤워까지 했다고요!”

 

“하지만 진짜 그런걸요? 제 손 냄새 좀 맡아보세요.” 그녀가 꼬리를 만졌던 손을 내밀었다.

 

나는 고개를 조금 숙여 그녀의 손 냄새를 맡았다. 그 즉시 내 코에서 그 냄새가 느껴졌다. “으, 확실히 말 냄새가 맞는 것 같네요. 도대체 왜 이 망할 냄새가 나는거지?”

 

“그렇죠? 저도 이게 단순한 성형수술 같은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러면 에반, 앞으로 어떻게 할 건가요?”

 

“나도 모르겠어요.”

 

“머물 곳이라도 있나요?”

 

나는 제시카를 올려봤다. 그녀는 조금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호의는 고마워요, 제시카. 하지만 시내에 호텔방을 잡아 놓았거든요.”

 

“하지만 에반! 만약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떻게 해요? 당신도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고 했잖아요. 혼자 머무르면 안 될 것 같은데요.”

 

흠..... 제시카가 정확히 짚었다. 확실히 제시카를 만났을 때 그 반가웠던 마음도 기억하고 있었고, 지금 상황에서 아무도 도와줄 수 있는 사람 없이 혼자 있는 것만큼 나쁜 상황도 없을 것이다. 차라리 가까이서 지내는 게 나았다. “알았어요, 제시카. 그렇게 하죠. 언제 만날까요?”

 

그녀는 귀에 달릴듯한 미소를 짓고선 말했다. “10시에 만나요, 한시간 반 뒤에요! 로비에서 기다리세요!”

 

제시카는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뭐, 행복한 것이 차라리 낫겠지......

우리는 제시카의 집에 11시쯤에 도착했고, 그녀는 나에게 자그마한 늦은 저녁식사를 와인과 합께 대접해 주었다. 식사를 하는 동안 제시카는 자신이 여기서 태어나서 자란 이야기를 해주었다. 몰론 자신이 말을 좋아하고, 그것이 나를 초대한 이유 중에 하나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아마 나랑 만나고 잠깐 내 직업에 대해 검색해 본 것 같았다. 흠.... 뭐 상관없었다. 그래서, 난 와인을 들이키면서 내가 말을 어떻게 기르는지 말해주었다.

 

한창 이야기를 하던 중간에 제시카가 갑자기 다가와선 내 입술에 손가락을 갖다 대었다. “쉬쉿” 그 손가락은 이내 뒤로 치우더니 갑작스럽게 제시카가 내 입술에 키스를 했다. 그러고선 옆에 앉아서 키득거렸다.

 

나는 다급히 손을 입술에 올렸다. “워우, 제시. 놀랐잖아요!”

 

그녀는 그저 웃기만 하면서 내 머리를 손으로 쓸었다. “당신 갈기가 너무 좋아요, 에반.”

 

난 그 말에 잠깐 흠칫했다. “으, 이건 머리카락이에요, 제시카. 갈기가 아니에요. 그냥 머리라고요.” 곧 그녀의 손은 위로 올라가서 내 귀를 만지작거렸다. 귀에 조금 긁적이는 것이 느껴졌다. 나는 그런 제시카의 손에 머리를 조금 뉘였다. “어머, 이거 느낌 좋네요, 으음....”

 

잠시 뒤, 제시카는 손을 떼고선 나한테 물었다. “저기 에반, 우리 침대에서 영화보지 않을래요?”

 

난 눈꼬리를 올리며 물었다. “그거 혹시 이상한 의도를 가진 제안은 아니겠죠?”

 

제시카는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바보,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같이 누워서 영화를 보자고요. 재밌을 거 에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런 것이 안 될게 뭐가 있는가? “그거 좋겠네요, 제시카. 혹시 보고 싶은 영화라도 있었나요? 뭐 로맨틱 코미디 같은 거라든가.....”

 

제시카는 내 팔을 잡아당겨서 자신의 침실로 끌고 갔다. “로맨틱 코미디는 아니에요, 하지만 걱정 말아요. 당신도 아마 정말 좋아하게 될걸요?”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선 날 침대에 뉘였다. 그러고선 서랍에서 DVD 하나를 꺼내서 DVD플레이어에 넣고선 침실에 있는 TV를 들었다. 그러고선 그녀는 침대 옆에서 옷을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난 잠깐 그녀의 잠옷을 힐끗 봤다. 상당히 귀엽고, 거기다 좀 ‘섹시’한 옷 이였다. .....아니다 제기랄 저건 그냥 잠옷일 뿐이다. 난 시선을 황급히 TV로 돌렸다.

 

그 영화는 에니메이션이였다. 곧 화면에 제목이 떴는데, ‘스피릿: 시마론의 종마’였다. 나는 제시카에게 물었다. “음, 이거 디즈니에서 만든 말 만화인가요? 아이들 보라고 만든 것 아닌가요?”

늦은 오후쯤에나 돼서야 나는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맥도널드에 멈춰섰다. 난 플레인 샐러드 2개를 주문해 가져와서 훔친 차 안에 앉아서 먹고 있었고, 차 라디오에서는 계속 뉴스를 방송하고 있었다. 듣자하니, 시애틀에서 뭔가 폭발이 일어났다 하는데, 난 사실 그런데 심경을 쓰고 있지 않았다. 대신 내 관심은 내 몸에 가 있었다. 내 몸의 하체 전체는 이미 붉은 털로 완전히 덮여 버렸고, 내 입안의 치열은 뭔가 초식동물 비슷하게 바뀌어 있었다. 이 변화가 뭐든 간에 점점 속도가 가속돼 가고 있었다는 건 분명한 사실 이였다. 이 변화가 다 끝나기 전에 내일 아침 해를 볼 수 있다면, 허... 그것 참 행운이겠구만.....

 

“흐우.... 잭한테는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되지? ‘오 안녕 잭? 재밌는 사실 말해줄까? 난 아마 12시간 안에 완전히 말로 변해버릴 거야! 날 마구간에서 기르는 것에 굳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어. 아, 지푸라기랑 물은 매일 갈아줘!’.” 순간 역겨움이 몰려왔다. 난 그딴 이상한 생각과 역겨움을 애써 떨쳐내면서 남아있는 다른 샐러드 하나를 한입 먹었다. ‘흠, 이 이빨들이 잎 같은걸 먹기 좋긴 하네...’

 

나는 탄식감에 한숨을 내쉬고선, 휴대폰을 꺼내 이메일을 확인했다. 요 근래 돌아가는 짓거리 때문에 한동안 확인을 못했으니까. 음? 근데 이건 뭐지? 신용카드 회사에서 온 이메일이네?

 

나는 그 메일의 글귀를 소리 내어 읽어봤다. “[에반 스미스]씨 귀하. 본 이메일은 귀하께서 [잭 스미스]씨와 공유하며 쓰고 있는 신용카드가 카드한도 [2000달러]에 도달하였음을 알리는 메일입니다. 만일 한도를 높이고 싶으시다면 저희 회사 홈페이지를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나는 휴대폰을 잠깐 내려놨다. 잭이 돈을 2000달러나 썼다고? 내가 떠난지 고작 24시간 가량밖에 안됐는데, 도대체 그 사이에 뭔 짓을 한 거야? 난 다시 휴대폰을 들고 잭이 보낸 이메일이 있는지 확인해 봤다. 노옵(nope), 아무것도 없었다. “흐음.....” 난 잭의 페이스북에 들어가서 포스팅 한 것이 있는지 확인해봤다. 노옵(nope),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스크롤을 올려 잭의 마지막 포스팅 날짜를 확인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 잭의 프로필 사진이 내 눈에 들어왔다. 파란머리의 하얀털을 가진 유니콘 이였다. 잭 이녀석이 항상 봐왔던 멍청한 쇼에 나오는 포니들 중 한 녀석일 것이다. 뭐, 그녀석의 프로필 사진은 몇 년 동안이나 포니 그림 이였으니까 뭐.....

 

하지만, 이번엔 그 포니 그림이 내 이목을 사로잡았다. 그 포니는 엉덩이 부분에 음표 문인을 하고 있었으니까. 나는 멈칫했다. 도대체 내가 왜 이걸 생각해 보질 못한 거지? 그 쇼에 나오는 모든 포니들은 전부 엉덩이에 그림이 그려져 있었잖아? 난 들고 있던 샐러드를 내려놨다. 분명 나도 다리에 그림이 새겨져 있으니까, 이게 단순한 우연으로 비슷하게 될 리는 없을 거다.

나는 휴대폰에서 새 탭을 띄워 [붉은 털 포니, 잘린 초록사과]라고 검색했다. ‘이런 미친!’ 내 휴대폰의 결과 창에는 어떤 붉은 포니 캐릭터가 떴다. 또 이 녀석도 다리 쪽에 내 것과 정확히 같은 잘린 사과모양의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게다가 머리 색, 꼬리 색, 심지어 털색의 명도, 채도 또한 같았다.

 

나는 이만 휴대폰을 내려놓고 차 시동을 걸었다. 이것 참....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난 일반 농장 말이 되는 게 아니라, 어떤 만화 속 포니가 되는 것 이였다. 뭐, 그나마 좋은 일 이려......나? 어쨌거나, 이게 잭이 즐겨보는 쇼에 깊은 관련이 있는 건 좋은 소식 이였다. 왜냐면, 잭이 해답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니까. 그가 가장 좋아하는 TV쇼니까, 나보다는 잘 알고 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제 집까지 그닥 멀지 않으니까, 해지기 전에 빨리 가서 물어봐야겠다.

 

~~~~~~~

 

농장에서 2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서 차를 세웠다. 이 차는 어디까지나 훔친 차니까 농장까지 몰고 갈 수 없었으니, 좀 멀리 떨어진 곳에서 버려야 했다. 다행히 이곳은 꽤 외진 곳이라서 주위에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난 슬그머니 도로를 벗어나 옆쪽에 있는 초원을 가로질러 운전해갔고, 곧 숲속으로 들어가는 오솔길이 나왔다. 도화지에 찍힌 점처럼 이 숲은 평원 한 가운데 있었고, 이 작은 숲은 누구도 섣불리 들어가려 하지 않을 것 같이 보였다. 그래서 난 숲 속으로 들어가 차를 숨겼고, 차에 붙어있는 번호판과 계기판 또한 손상시켜서 차의 출처를 알아내기 최대한 어렵게 했다. 그제야 난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가 있었고, 난 거기에 있는 내 물건들을 전부 챙기고 그 차는 문과 창문을 전부 열어둔 채로 자리를 떠났다. 그 숲에는 몇몇 동물들이 보금자리를 만들어 살고 있었고, 경찰이 차를 찾았을 때는 동물들이 그 차에서 지내면서 더욱 손상돼 있을 터니까.

 

농장까지는 2마일 조금 안 되는 거리였으니 난 가볍게 조깅하며 집으로 갔다. 그러나 해는 거의 져가고 있었고, 게다가 하늘도 곧 비가 쏟아질 듯 했기에, 나는 조금 페이스를 올려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발굽으로 땅 위를 달린다는 것은 상당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땅에 발을 디디는 한발 한발 마다, 발굽 아래의 대지가 느껴졌다. 그냥 편안했었고, 내가 발굽으로 달리는 것을 후회하지 않게 되었다. 심지어 신발을 신는다는 사실을 상상하기 힘들 정도였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편안했으니까. 침대를 발로 밟고 다니는 것 보다 더 편안한 것 같이 느껴졌다. 게다가 돌덩이나 나뭇가지들을 밟을 때 느낄 고통 또한 발굽이 전부 막아주고 잇는 것 같았다.

 

그 때문일까? 내가 농장에 도착했을 무렵엔 조금 슬퍼졌었다. 조금 더 뛰면서 생각을 하는 것을 바라는 마음이 남아있었기 때문일 거다. 다리는 그다지 아프지 않았다. 단지 다리의 모양과 느낌이, 이제는 사족보행이 더 편하다고 계속 말해올 뿐 이였다. 으으, 일단 잡생각은 저리 치워두고, 난 바로 눈앞에 보이는 농장 쪽으로 다가갔다. 이런, 주차 자리에 차는 없었다. 잭이 외출중인가 보다.

나는 현관문으로 걸어갔다. 마구간을 지날 무렵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잠깐 걸음을 멈췄다. 난 속으로 마구간을 들를까 말까 갈등을 했다. 내 마음 한 구석에는 바로 그곳으로 들어가서 둘러보면서 말들을 몇 번 쓰다듬어주고 싶었다. 장난삼아 걔네들이 가지고 있는 발굽이랑 내 발굽이랑 비교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나는 그 생각에 절로 웃음이 지어졌지만, 또 다른 마음 한 구석에서는 자그마한 두려움이 남아 있었다. 그것들이랑 같은 냄새, 자취를 가진다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치니까. 여하튼, 나는 마구간을 지나쳐 바로 집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선택했다. 난 바로 가방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어 들어갔다.

 

“이봐? 아무도 없나?” 나는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바깥을 등지고 안으로 걸어가면서 내 가방과 의료파일들을 내 방안에 뒀다. 집안을 돌아다니는 거울을 몇 번 지나기도 했는데, 자세히 보려고 는 하지 않았다. 난 이미 상태가 점점 더 나빠진다는 사실을 굳이 거울 앞에서 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으으, 난 이 상황을 잠시 잊을만한 것이 필요했다. 뭔가 목을 축일만한 진한 것. 난 저번에 25년 된 스카치위스키의 존재를 생각해내며 부엌으로 달려가 그걸 꺼냈다. 유리잔을 꺼내 스카치를 붇고선, 얼음 몇 개를 넣은 다음에, 그대로 반절을 들이마셨다. 크으으으, 정말 생명수 같았다.

 

난 그대로 식탁에 기대서 번개 치는 창밖을 바라봤다. 이야 날씨봐라, 아니 이런 X발. 아마 지난 36시간의 일이 그동안 살아왔던 25년의 모든 일보다 훨씬 거지같을 거다. 난 숨을 깊게 들이쉬고선 유리잔에 입을 다시 갖다 댔다. 그대로 번개랑 비가 미칠 듯이 내리는 창밖을 보면서............... 잠깐, 뭣? 창밖에서 이쪽으로 다가오는 불빛이 보였다. “썅, 전조등이다.”

 

난 유리잔을 스카치 병 옆에 두고선 발소리를 죽이며 창문으로 다가갔다. 보이는 차는 잭의 차인 것 같았다. 난 주위에 보이는 전등을 모조리 껐다. 이제 어째야 하나..... 난 여기서 잭이랑 바로 얼굴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다. 분명 높은 확률로 데이브랑 같이 지내고 있을 것 같으니까. 더욱이, 난 데이브를 이 일에 연루시키고 싶지 않았다. 이 꼴을 잭 한명이랑 마주하는 것도 충분히 곤란한 상황일 테니까. 다행히 우리집 거실은 부엌 쪽에서부터 붙어있는 형태였기에, 난 거실 소파에 몸을 뉘여서 숨었다. 거실 불이 켜지고, 내가 일어나 있지 않는 한, 내가 시야에서 보일 일은 없을 것이다. 게다가, 부엌 쪽 동향을 살피기도 쉬웠다.

 

현관이 열리고선 누군가가 무거운 짐가방 같은걸 턱턱 놓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선 발소리가 계속 가까워졌다 멀어졌다 했고, 그 모든 과정이 계속 반복되었다. 난 여기에 숨은지 5분밖에 안됐는데 들리는 건 발소리와 끝없이 반복되는 물건 놓는 소리 뿐 이였다. 오, 신이시여. 도대체 뭘 산거야? 도대체 얼마나 사온거지?

 

마침내 문을 닫는 소리와, 자그마한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부엌 쪽에서 들렸다. “목소리 둘이네? 잭이랑 데이브인가? 제기랄.” 하지만 부엌 쪽에서 보이는 2개의 형상을 보는 순간, 간담이 서늘해지며 내 생각이 전부 바뀌었다. “걔네들이 아니잖아?”

 

두 사람이 완전히 젖은 몸으로 웃으면서 들어왔다. 난 걔네들이 잭이랑 데이브라고 믿고 싶었지만, 그들의 모습은 그 사실을 부정하게끔 만들었다. 그들은 거의 여자 같았으니까. 한 명이 다른 사람한테 뒤돌아보며 말했다. “휴, 어쨌든 전부 끝났구나. 이제 오늘처럼 오래 집을 비우지 않아도 되겠어.”

 

쟤가 잭인 것 같았다. 그러지 않은가? 아 잠깐, 아니다. 그 사람이 모자와 셔츠를 벗었다. 긴 금발머리가 등 뒤로 찰랑거렸다. 딱 봐도 여자인 것 같은데, 혹시 다른 쪽이 잭인가?

 

잠깐, 아니였다. 두 번째 사람 또한 셔츠를 벗었고, 마치 인형의 머리 같은 화사하고 선명한 색의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그 머리의 소유자는 곧 신발과 바지 또한 벗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정말 다행이지.”

 

곧 그 둘은 속옷을 제외한 모든 옷가지를 벗었다. 걔네들이 남성용 사각팬티를 입고 있는 게 조금 이상하긴 했다. 하지만, 그런 것에 깊은 생각을 하기도 전에 무지개색 머리를 한 여자가 자기 속옷 안에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내 내었다. “오, 안돼.....” 나는 그 여자의 머리색과 매치되는 무지갯빛 꼬리를 보며 중얼거렸다. 난 순간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사람은 꼬리가 없잖아.....’ 난 눈을 가늘게 뜨고선 눈에 보이는 상황을 납득해야했다. 맞다. 저건 확실한 꼬리다. 게다가 세상에, 두 명 모두 머리위에 말 귀를 달고 있었다. 무지개 친구는 파란색 귀였고, 금발 여자는 주황색 이였다. “이건 또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내가 중얼거렸다.

파란 무지개머리의 여자가 자기 꼬리를 꼭 끌어안았다. “으와, 이제 훨씬 낫네. 으으, 그리웠다 욘석아!”

 

난 입이 떡 벌어진 채로 그냥 주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때에 다른 쪽 여자도 금발 꼬리를 내어 흔들면서 말했다. “네 말이 맞았어, 나도 너처럼 이게 점점 좋아지려고 한다.”

 

무지개 여자가 웃으면서 말했다. “어우 아무렴, 셀레스티아가 준 것인데 당연하지!” 그러고선 달려가서 금발 여자를 껴안았다.

 

도대체 이 사람들한테 어떤 일이 일어난 거야? 얘네 들은 또 왜 이리 행복해 하는 거지? 원래 꼬리 가진걸 보고선 심각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닌가? 분명 이 상황은 정상이 아닌 것 같다. 오 세상에....... 만약 저들이 잭이랑 데이브라면 어쩌지? 만약 저들도 내가 겪었던 것처럼 끔찍한 일을 겪었다면? 아니, 세상에 그럴 수가―

 

그때 무지개 머리가 말했다. “우리가 해냈다고, 잭! 필요한 걸 전부 가졌다고! 이제 여기 머무르면서 원인을 생각하기만 하면 돼!”

 

아니. 아니야, 이럴 리가 없어.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리는 게 느껴졌다. 분명 잭이 이런 일을 스스로 자초하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잭한테 일어났을 때 분명 잭은 이런 반인반수가 된 것에 불행했을 것이다.

 

그 금발머리(잭인가?)가 말문을 열었다. “그래, 인마. 이제 며칠간 걱정은 없겠으니...... 오, 스카치로 축하하자고? 대시, 그거 좋은 생각인데?”

 

아 이런, 내 스카치가 아직 식탁에 있다는 것을 깜빡했다. 무지개 머리가 식탁을 보면서 말했다 “잭? 나는 저 스카치 안 꺼냈는데.......?”

 

나는 절망감에 고개를 숙였다. 그들이 내 스카치를 찾은 것뿐만 아니라, 부엌에 있는 두 사람이 잭과 데이브라는 것을 알아차린 상황이기 때문이다. 모든 증거들이 사실을 여실히 증명해주고 있었지만, 난 그냥 그걸 부정하고 싶었다. 저들도 분명 나와 똑같은 길을 밟을 것이다.

 

일단 저 둘 중에 금발머리 쪽이 잭인 것 같았다. 그리고 잭이 뭘 어쨌거나, 데이브가 같이 동행하려 할 것이다. 게다가 흠...... 데이브가 저거랑 같은 무지개색의 포니 인형 같은걸 생일 때 받지 않았던가? 그는 언제나 바탕화면이나 방 다른 곳에 그 포니의 물건, 물품 같은걸 모아놨었다. 잭도 걔가 거기에 완전히 맛 갔다고 자주 말하기도 했다. 게다가 지금 부엌에 있는 저 사람의 머리 색 또한 그 파란 포니의 갈기 생하고 똑같은 색이 아니던가? 우연 치고는 들어맞는 게 너무 많았다.

 

난 탄식이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보아하니 나만의 문제였던 것이 좀 더 커진 것 같았다. 그 ‘금발머리 형제’는 식탁을 보더니 당혹스러운 얼굴로 ‘무지개 데이브’를 보며 말했다. “그럴......리가 없어. 분명 나올 때 문을 잠궜다고.”

 

데이브가 식탁 쪽으로 다각 다각 걸어오며 말했다. “음.... 잭? 여기 잔에 얼음이 아직 있는데? 무슨 뜻인지는 알겠지?”

 

음..... 이제 내 존재를 내보일 때가 된 것 같다. 나는 조심스럽게 일어서서 몸을 부엌쪽으로 돌렸다. 네 앞에는 잭이랑 데이브가 등지고 서 있었고, 나는 조용히 그 둘의 뒤로 조용히 다가갔다. 거리가 몇 피트 정도로 가까워졌을 무렵, 잭이 목소리를 올렸다. “깨진 창문도 없고, 문도 전부 잠겨 있었어. 그녀석 빼곤 누구도 열쇠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데이브가 잭의 어깨를 잡으면서 물었다. “그녀석? 누구? 말해봐, AJ! 누구냐고!”

 

나는 둘의 등 뒤로 나지막이 말했다. “그의 형.”

 

+=

 

[출처:http://www.fimfiction.net/story/93383/five-score-divided-by-four]

[원작자:Twistedspectrum]

 

이렇게 일행은 3명으로 늘어납니다.

이제 슬슬 이야기의 본격적인 막이 올라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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